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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내 가족은 내가 지켜야지, 단 내가 힘 있을 때까지)

by 김수기

정년퇴직을 하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강, 아니 대충 살던 살림에 적극적이기로 했다. 우선 구석구석 닦고 비우고 정리를 하였다. 내가 봐도 진짜 퇴직 전, 후의 집안 분위기가 정말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좋아한다. 우선 반찬 색감이 다르고 맛이 다르다고 했다. 인테리어가 깔끔해지고 분위기가 있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기 대신에 직접 손걸레로 구석구석 다 닦고 했으니 깔끔해진 것은 당연했다. 완전 살림에만 전념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부터 집안에 있는 것이 답답했다. 역시 나는 바깥으로 나 댕기던 습관을 못 버리나 싶었다. 뭘 해볼까? 하다가 재직 시에 우리 집 옆에 위치한 대학평생교육원 야간반에서 바리스타 자격증과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생각났다. 우리 동네에는 그야말로 카페가 너무나 많다. 애초에는 내가 직접 창업을 할까 싶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마다 임대라는 쪽지가 나붙는 것을 보고는 아, 잘못하면 말아먹겠다 싶어서 크고 작은 카페마다 지원서를 몇 군데 보냈다. 그러나 연락이 없었다. 직접 전화를 해보니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더 성실하고 열심히 하시는 것은 아는데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이 부담을 느끼고 오시는 손님들이 젊은 층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이가 많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자존감이 확 내려갔다. 내가 누군데? 나는 무엇이든지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그야말로 펑펑 솟아나던 사람이었다.

그래, 어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는 냉정하다. 자신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이제 나는 63세의 평범한 할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적응하는 나였기에 서운하지만 어쩌리오. 그러던 즈음에 모시던 시아버님께서 몸이 예전과 다르게 자꾸 살이 빠지고 입맛도 없으시다고 하고 자리에 자꾸 누우셨다. 연세가 96세이지만 절대로 요양병원에는 안 가시려고 하셨고, 아프신 분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약국에서 소화제 사 드리고, 병원에 모시고 가면 의사들은 그냥 노환이라고 약이 없다 그러셨다.

혹시 자리를 보존하고 누우시면 집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맏며느리로서 책임감이 생겼다. 남편에게 요양보호사 공부를 할 거라고 통지를 했다. 그리고 집 가까이 학원에 등록을 하고 왔다. 7월 초에 이론 공부를 시작으로 실습을 나가고 국가고시를 치르기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나도 늙을 것이고 남편도 70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간호학에 가까운 공부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을 정도로 건강했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치매가 와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병원의 부주의로 코로나 감염으로 친정 엄마를 잃었을 때 너무나 답답하고 화가 났었다. 내가 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하게 방법을 몰랐다. 이제 옆에 계시는 시아버님이 노환으로 아프기 시작하니까 어떤 방법으로 환자를 모셔야 할지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 달 만에 시아버님께서는 돌아가셨다. 내가 해 드린 것이라고는 없다. 말동무를 해드리고 그냥 드시고 싶은 음식 해드린 것뿐이다. 그만큼 건강하셨는데 나이가 드니 몸은 어쩔 수 없이 망가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제 옆에 있는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어설픈 지식으로 뭐라고 하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면서도 내 말을 들어준다. 여기저기 센터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으니 실제로 아프신 어르신들을 모셔보라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막상 나가서 해 보니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자꾸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 오르고 복잡한 망상이 생각났다. 남편이 그만두라고 했다. 우리 가족들이라도 챙기라고 한다. 그래, 이 세상에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너무 이기적인가 싶다.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해야 하는데 자꾸 우울감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나이가 드니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정신적으로도 나약해졌다. 이제 내 몸부터 관리를 하고 가까이 있는 남편의 요양보호사가 되어 주기로 했다. 그래도 자격증 취득한다고 공부하면서 사귄 선생님들과 친해져서 다양한 인생을 경험한 것은 돈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라고 위안하며 또 늘어난 자격증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쓰임새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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