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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 후기

(좋은 시어머니란?)

by 김수기

"엄마가 결혼식 당일에 축사를 해주셔요."

"왜? 아빠께 말씀드려 봐"

"싫어요. 아빠가 하시면 제가 울 것 같아요."

이제 취업한 지 4년 차인 아들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은 타이밍이라며 1년쯤 만났다는 참한 아가씨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실 집으로 데리고 오기 1주 전에 미리 통보를 해주어서 집안 정리를 하고, 아끼던 예쁜 그릇을 끄집어내어 깨끗이 닦고...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뭘 그렇게 야단스럽게 구노?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지"

"그래도 아들 녀석이 처음으로 결혼 상대라며 집으로 초청을 했는데 첫인상이 중요하잖아요."

" 왜 우리 집이 어때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원래 성품이 무뚝뚝하고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 부산을 떨고 우리 집 식구가 되려고 했는지 환한 표정과 단정한 차림의 아가씨는 5월 첫 주에 우리 아들과 결혼식을 올렸다. 40여 년 전, 양가 부모 도움 없이 우리 부부는 지방 소도시의 10평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하여 그럭저럭 절약해 가며 살림을 이루고 남매를 서울로 유학 보낸 것이 전재산이다. 특히, 조금은 넉넉하게 자란 나와는 다르게 너무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남편은 그야말로 돈 한 푼 허튼 곳에 쓰지 않고 저금했고 우리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특별히 속 썩이지 않고 두 남매는 잘 자라 서울 일류대학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누나인 딸은 9년 전에 결혼을 하고 (지금 현재 외손자 한 명), 직장 생활하면서 옆동네에 사시는 사돈의 육아지원과 사위의 사랑으로 다행히 잘 살고 있는 눈치다. 사돈과도 사이가 돈독하여 고부 갈등 없이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사위는 딸이 바쁜 마감 시간이 되면 연차를 내고 가끔 외손자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휴가를 보내고 갈 정도로 성격도 좋고 이제는 편한 사이가 되어 서울 사위집에 가도 그냥 편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장서갈등도 없는 것 같다. 애초에 나름대로는 아이들 교육에 자신이 있던 전직 교사인 내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외손자를 키우는 딸이기에 전혀, 일체 육아나 살림살이에 의견을 제시하지 않다 보니 갈등 유발 자체가 없는 것이다. 육아에도 엄마 때와 시대가 다르다 하니

'그래? 그럼 요즘 방식으로 키워라'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잘하는 것 같았다.

이제 딸은 벌써 마흔 고개를 바라보면서 어느덧 엄마의 심정도 이해하고 자기 인생의 밑그림에 서서히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채색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덜 된다. 아니 걱정을 안 하고 싶다.

.......................

이제 며느리를 맞이한 지 다섯달된 새내기 시어머니의 소감을 적어볼까 한다.

나보다 먼저 아들을 결혼시킨 주변의 선, 후배와 친구들이 좋은 시어머니 조건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적은 쪽지를 나에게 보내온다. 요약하면 "가족 단톡에 당기지 마라, 전화를 먼저 하지 마라, 메시지도 보내지 마라, 가능하면 며느리가 오면 외식을 하여서 설거지를 만들지 마라, 잘해준다고 반찬을 만들어서 갔다 주지 마라,

그냥, 가만히 있어라, 오면 좋고 안 와도 그러려니 해라, 말을 조심해라, 며느리 친정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마라"기타 등등....

'아이고야, 이게 무슨 일이고' 싶었다.

남편에게 읽어주니 의외로, "그래, 그러면 우리는 편하고 좋지 뭐"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인 나만 조심하면 된 다한다. 여자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나?

'그래 그게 뭐 어렵나?' 싶었다. 결혼 당일에 사돈 내외와 아들, 며느리 하고 서로 고생했다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우리는 딸네로 가서 하루 더 쉬고 내려왔다. 그리고 아들 내외는 신혼여행을 아들 녀석 직장 휴가 기간에 간다고 미루고 집 정리에 들어갔다. 그 후 2주 있다가 인사하러 내려온다고 하길래 그냥

" 오냐 너희들 시간 되는 대로 오너라." 했다.

그리고는 2주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혼 전 시도 때도 없이 "엄마 뭐해요?" 하며 전화 오고 메시지 보내던 아들 녀석도 아무리 신혼이지만 폰은 조용했다. 마음을 서서히 비웠다. 그러다가 온다고 약속한 주말이 되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니 살갑게 인사를 하는 며느리다. 그리고 지나간 생일 축하라며 서울에서 가지고 온,

떡케이크는 모양 하나 변하지 않고 원형보존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신경을 써서 가지고 왔으면 저렇게 이쁜 모습 그대로 시어머니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들고 왔겠나 싶었다. 배고플 것 같아서 부족하지만 솜씨를 부려 점심상을 혹시나 어색할까 봐 남편과 나는 먼저 먹고 차려주니 "어머님, 오징어순대 이거 너무 맛있어요. 열무김치도 맛있어요. 그런데 이거 준비하시느라고 고생하셨지요?" 등등의 살가운 말을 하면서 다가온다.

'아, 이런 재미구나!' 싶었다. 그냥 이쁘기만 하다. 내 딸도 사돈 내외가 이뻐해 주시는 모습을 봐 왔기에 전화 한 통 없던 2주간의 서운함은 싹 잊었다. 이렇게 간사하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닷가 횟집에 가서 저녁을 평소와는 다르게 거한 가격인데도 남편이 쐈다.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며느리가 좋아한다는 말에 앞장서 나서는 모습에 아들도 입이 귀에 걸린다. 소소한 이야기를 안주삼아 곁들이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또 이쁘다. 집으로 오려니 젊은이들이 한다는 인증숏을 며느리가 네 명에서 같이 찍자고 한다. 남편 눈치를 보려고 하는데 벌써 남편은 사진 가게 쪽으로 성큼성큼 간다. 재미있는 분장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모습에 '이렇게 다정한 시아버지가 어디 있니?' 싶다. 아들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엄마, 오늘 아빠 너무 멋져요." 한다. 남편은 애써 며느리 의사를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는데 표정이 너무 좋다. 다행이다.

이튿날 피곤하지 싶어서 푹 자고 나오라고 한 다음, 아침, 점심 겸 브런치를 먹고 다닌다고 해서 묵은지 갈비찜 김밥을 쌌다. 기차 안에서 냄새 피우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니 서울 도착하면 바로 먹으라고 두 통을 싸서 보냈다. 결혼 전 아들은 도착하면 바로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는 매뉴얼인데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그냥 티브이만 보고 있는데 느닷없는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옴마야, 이게 무슨 일이고?' 싶었다.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어머님 맛있는 음식도 잘 먹고, 편안하게 잘 있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순간 가슴이 찡하게 울림이 왔다. 아, 우리 집에 좋은 며느리가 들어온 것 같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주위 지인들이 알려준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방법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별로 어렵지 않구먼. 쉽네.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정답은 기다려주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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