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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는 신중년 2막 첫날

(무계획 생활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몰라)

by 김수기

2022.08.31자로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방학기간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선후배님들의 축하 회식과 더불어 약식 송별회를 열어주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교장이라는 직위까지 리더의 자리를 경험한 나로서는 약간의 책임감이 강한 성격 탓으로 소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더니 깊은 잠을 잘 못 자고 위장병까지 왔었다. 마지막 퇴임식도 코로나로 생략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안 주고 조용히 마지막 인사말만 하고 떠나리라 했었는데 도서관에서의 깜짝 이벤트는 나를 감동시키면서 더 미안하게 했다. 끝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게 해 준 주위 선생님들께 고맙기만 했다.

드디어 백수 첫 날인 9월 1일, 명퇴 후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후배의 공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듣고 싶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다. 시외 공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공장에 도착하니 후배는 주문 들어온 물건 배달준비로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아, 순간 부러웠다. 이렇게 또 시작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바쁜 후배를 위해 박스 조립을 돕고 나니 오후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인근 호숫가 근처 매운탕집으로 저녁 식사하러 가자는 손을 뿌리치고 남편 식사 챙기러 가야 한다니 깜짝 놀란다. 이제는 각자 해결하라고 한다. 오는 길에 차를 세우더니 인근 유과공장에서 주문한 유과를 다섯 봉지 차에 실어주는데 아마도 수고비 같다. 말은 안 해도 고맙다는 마음이겠지. 평소 손이 크고 주위를 잘 보살피고 정이 많은 후배는 8년 전 명퇴한 이후로 음식솜씨가 좋아 그 분야에 특허를 내고 3층짜리 건물까지 지어 새로운 분야를 걸어가고 있는데 내 눈에는 조끔씩 성공의 길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나였는데 어쩌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르치는 일뿐인데? 저녁에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을 걷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아들로부터 뭐 해? 하는 메시지가 왔다.

"아들아, 엄마는 무계획인데 앞으로 어쩌지? " 하니

"엄니, 그동안 수고하셨으니 그냥 놀고먹고 쉬세요." 한다.

그래, 계획대로 안되어 실망하느니 그냥 하루하루 부딪히며 살아보자 하면서 백수 첫날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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