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 올해의 사진

by 멈춤의 일기장

올해의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나는 유독 말을 하지 않는 사진을 떠올린다.


청산수목원의 황금 들판.
이틀 내내 비가 내리다
돌아오는 날에야 반짝하고 개어
햇살이 쏟아지던 오후의 풍경이었다.


사진 속 들판은
무언가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노랗게 익은 시간 위로
빛이 천천히 내려앉아 있을 뿐이다.


그 앞에 서 있던 나는
괜히 숨을 고르게 되었고,
괜히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정리되고 있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날의 공기,
햇살의 온도,
바람이 스치던 결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이라기보다
‘잘 머물렀던 순간’에 가깝다.


올해의 나는
자주 흔들렸고
자주 서둘렀지만,
이 사진 속의 나는
그 어떤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이 한 장의 사진은
올해의 기억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게,
가장 오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