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앙상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길 위를 스치며 지나가는 휑한 바람에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이파리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있다.
너무 설레어서 잠도 설쳤다.
배흘림기둥에 서보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한없는 동경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어
들뜬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부석사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심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찬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윽고 마주한 돌계단은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내게 겸손하라고, 더 겸손해지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그렇게 서너 번의 돌계단을 거치고 나서야
무량수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무량수전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겸손하게 올라오며
비워내는 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무량수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숨을 몇 번 고른 뒤에
천천히 눈에 담아 가슴속에 새겼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오랜 시간을 품은 듯한 고요,
해가 누렇게 번진 기와의 숨결,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배흘림기둥.
한쪽 모서리의 기둥으로 다가갔다.
불룩한 기둥의 가운데는
오랜 세월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기둥의 갈라진 틈새는 세월의 이야기를
사이사이에 담아 넣은 역사의 결과처럼 보였다.
손도 대보고, 얼굴도 살며시 대보았다.
거칠었다.
바짝 마른나무의 질감은
눈물이 날 정도로 거칠었다.
긴 세월을 어떻게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텨왔는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기둥의 숨결을 느끼며
깊은 숨을 고르고 난 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눈앞에 보이는
태백산맥의 검푸른 능선에 멈춰 버렸다.
고요하면서도 웅장하고 강인한 그 선은
무량수전의 기둥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마주 보며
서로의 기운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에 닿았다.
굳세게 버티며 이겨낸 세월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돌아 나오는 길,
공기는 조금 더 맑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잠시 머물렀던 그 시간은
내게 겸손함과 고요함을 선사해 주었다.
배흘림기둥의 부드러운 곡선은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마음속 대들보가 되어
늘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