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이라는 이름의 기도
나를 포함해 세 여자가 가끔 만난다.
만나면 과음을 하게 된다.
나는 가장 나이 많은 여자이고,
한 여자는 다섯 살 연하,
또 한 여자는 띠동갑이다.
다들 가정사로 바쁘다 보니
이번 모임도 몇 달을 훌쩍 넘겨서야 성사되었다.
그래도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아는 사이다 보니
어색하지 않게 각자의 상황을 털어놓게 된다.
안주거리는 늘 비슷하다.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막내가 먼저 판소리를 하듯 먼저 한 자락을 깐다.
하하, 호호 웃으며 소주 한 병이 비워진다.
둘째가 그 위에 한 자락을 더 얹는다.
소주 두 병이 사라진다.
삼층탑을 쌓듯 나도 한 자락을 얹는다.
어느새 세 병이 비어 있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하하, 호호에
아이를 걱정하고,
남편과의 소통을 걱정하고,
시댁과의 마찰을 털어놓는다.
일차가 끝나면
막내는 아직 부족하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한다.
이차가 시작되고 우리는 다시 탑을 쌓는다.
마치 탑돌이를 하듯,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푸념이라는 이름으로 늘어놓는다.
술은 그 상에 올려진 제수일 뿐이다.
돌 더미 같은 이야기들이 쌓여갈수록
코로, 입으로
“이제 좀 시원해졌다”는 한숨들이 흘러나온다.
그래도 아직 찾지 못한 한 가닥 희망의 뿌리를
가슴속에서, 머릿속에서 더듬어 본다.
가족이 되어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탑을 돌며
정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비는 일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소원 비는 일을 멈추면 어느 곳에 선가 표시가 난다.
어느 누군들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 않겠는가.
어쩌면 우리의 푸념은
여름이면 덥다고,
겨울이면 춥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건 아닐까.
늘 꽃 피는 봄이기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
그렇게 또 한 번
세 여자의 과음은 푸념에서 푸념으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