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도 없던 시절, 우리는 더 많은 별을 보았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지구에서 가장 밝게 보인다는 금성을 찾고, 북두칠성을 찾아보며 잠 안 오는 긴 밤을 보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네모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손가락으로 연결해 보는 것도 밤에만 할 수 있는 재미진 일이었다.
밤하늘의 별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면 암흑이 세상을 뒤덮어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밤을 상상했고, 달과 별이 환하게 밤을 밝힐 때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밤새도록 동네 아이들과 뛰어다니다가 결국 부모님 손에 붙들려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 길었던 머리에 파마를 해주겠다며 아카시아 잎 줄기를 머리카락에 대고 뱅글뱅글 감아두었다가, 꼬여 버린 머리를 풀지 못해 엉엉 울었던 밤의 기억. 어른들이 오시고 나서야 언니들이 혼이 나고 사태가 수습되었다.
그때는 시골 구석에 가로등이라고는 없던 시절이라 저녁만 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밝혀 둔 백열등 하나가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 새어 나오는 빛으로 어림짐작해 길을 다녔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텔레비전이 한 대뿐이었다. ‘수사반장’을 할 때면 그 집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드라마를 보았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분위기만은 또렷하다. 그 시절을 살았다는 감각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컴컴한 골목길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늦은 밤까지 술래잡기를 했다.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그때는 다들 시력이 좋았던 걸까 하고 혼자 웃어본다.
밤이면 남의 집 울타리에 탐스럽게 열린 과일나무에 돌을 던져 과일을 따 보겠다며 열심이던 기억도 난다. 방 안에서 다 들렸을 텐데도 어른들은 알면서 모른 척, 아이들의 과일 서리를 눈감아 주곤 하셨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왜 이렇게 추억이 돋아나는 걸까.
어둠은 곧 추억과 같은 것일까.
까마득한 기억이어서, 까만 밤하늘을 보면 까마득한 기억이 솟아나는 걸까.
유난히 반짝임이 많은 밤하늘은 추억에 잠기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문득 밤하늘의 별이 사실은 별이 아니라 우주정거장과 인공위성일 수 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밤하늘을 유심히 보며 어릴 적 놀이였던 금성과 북두칠성을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너무 촘촘히 빛나는 별들 속에서 북두칠성과 금성을 구분할 수가 없다.
어렸을 적 까맣던 하늘은 회색이 되었고, 금성처럼 크고 밝게 빛나는 별이 서너 개 보인다.
인류의 발전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찾을 수 없는 추억을 가슴 아파해야 할까.
별에 관심이 적어서 나만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
숙연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는 이미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에, 어린 시절의 금성과 북두칠성이 무엇이 그리 대수일까 싶지만, 그 까맣던 하늘에 대한 그리움은 분명 나의 것이다. 별을 보던 어린 내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 밤을,
아름다운 추억의 일기장으로 간직해 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