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라는 이름의 새해

‘즐거움’보다 ‘역할’이 먼저였던 나의 설

by 멈춤의 일기장

이미 1월 1일에 '신정"이라는 이름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인사를 모두 나누었다.
그런데 다시 2월 한가운데에서 ‘구정’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새해를 맞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설빔을 입고, 친척 집을 돌며 세배를 하고,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오래된 설.
그 풍경은 이제 조금씩 빛이 바랜 기억이 되어 가는 듯하다.


올해도 연휴가 길다.
조상의 덕을 본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떠나고,

조상의 덕을 일도 보지 못한 누군가는 명절 스트레스에 지쳐 다툼을 벌인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다.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내게 명절은 어떤 기억이었을까.


아버지는 장손이셨고, 나는 그 집의 장녀였다.
집안에 작은 행사라도 있으면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잔심부름을 도맡아야 했다


아직도 선명한 장면 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동네 아이들과 쥐불놀이를 하며 한창 신나게 뛰어놀던 밤이었다. 나도 그 속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불려 들어갔다.


아버지는 마당에 서 계셨다.
다른 일로 화가 나셨던 건지, 아니면 그저 내 행동이 못마땅하셨던 건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계집아이가 밤늦도록 선머슴아처럼 밖에서 논다”는 이유였다.


또래 여자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날 집으로 불려 들어와 혼이 나고 다시 나가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외출은 늘 조심스러워졌고, 나는 어느새 감시의 대상이 된 듯했다.


어쩌면 ‘K장녀’로서의 고된 여정이 그때 이미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명절은 즐거움보다 책임과 의무가 먼저 떠오른다.
언제나 어깨 위에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얹혀 있었다.


내 남편은 세 번째 아들이어서 그나마 나에겐 구세주 같은 존재이다.

결혼하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졌다.


대신에 누군가는 그 짐을 지고 있을 것이고

나는 알면서도 나서지 않을 때가 많다.


어찌 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해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에

나서지 말아야 할 곳에 나서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쩌면 나 자신을 변호하는 변명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나는 또 길을 나선다.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족의 평안을 위해.


빛이 바랬다 해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나의 오래된 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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