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부모됨 시리즈] 책임감과 부담감. 편
나는 정말 입이 짧은 아이였다.
당연히, 지금은 못 먹는것도 없고, 없어서 못 먹는다.
그런걸 보면, 내가 어린 시절 입이 짧았던 이유는 아마도 심리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기질적으로 고집이 세거나 까다롭기 보다는 순한 아이였지만, 대신 겁이 많았다.
뭐든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겁이 났고, 모르는 걸 시켜도 겁부터 났다.
그럴때마다 내가 주저주저하면 엄마는 나를 다그치지는 못해도, 대신 얼굴에 피곤과 짜증을 가득 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난 그것도 겁이 났다.
분리불안이 심했던 나는 그럴때마다 엄마가 나를 두고 어디로 갈까봐, 혹은 나를 버릴까봐 덜컥 겁이 났었다.
어린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인 엄마가, 날 버릴까봐 두려워하면서 받는 그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이다.
사실 엄마가 날 버릴리도 없고, 엄마가 나를 버리겠다는 그런 뉘앙스를 전달한 적도 없다. 애초에 우리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던건지 나도 전혀 알 수가 없다. 단,
5세 이전에 만들어진 나의 잠정 인격(provisional personality. 융심리학 용어), 혹은 나의 사적논리(private logig. 아들러심리학 용어)는 아마도 그렇게 고정되었나 보다.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유기불안.
그래서 나는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얻었고, 이는 나의 완벽주의를 낳았다....
나의 심리내적 성장은 대충 그런 식으로 흘러왔다.
모든 스트레스가 그렇지만, 어쨌든 아이의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는 쌓이면 반드시 표출이 된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먹는 것을 거부하고, 툭하면 배가 아프고 열이 나는 잔병을 달고 살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나는 결코 편안한 아이가 아니었다.
'말은 잘 들으나 탈이 많이 나는 손 많이 가는 아이.'
이런 나 자체가 또 부모, 특히 엄마를 힘들게 하는 제일 큰 요인이었겠지. 악순환의 연속이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나는 조금씩 커가면서 식탐도 생기고, 그만큼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짧은 입은, 재수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정말 엄청나게 먹어대었고, 세상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역시나 스트레스가 이렇게 무서운건가...
세상 모든 음식을 섭렵하고 행복한 삶을 살던 나의 인생은, 둘째를 낳고 세상 제일 어려운 문제로 가득차게 되었다.
나보다 더 한 놈이 나왔다.
둘째를 임신했던 그 시절이 내 인생 통털어 제일 힘들고 정신도 없었던 때였다.
큰 애때랑은 완전히 다르게 제대로 몸도 마음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처지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뱃 속에 있는 아들이 전부 받았다.
뱃 속에서 양수를 먹고 체해 태독을 몸에 담고 나왔던 그 아이는,
태어나고 5개월 되던 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때까지 태독인줄 몰랐다.)
4일 동안, 총 28번의 경기를 하면서 계속 넘어갔다.
심전도, 뇌파검사, 뇌MRI까지 안 해본 검사가 없었지만,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경기하고 잠들고 다시 정신을 차리면 깨워서 젖을 물렸다. 그런데 일지를 쓰면서 보니까 애가 젖만 먹고 나면 바로 넘어갔다.
먹고 나서 조금 지나면 바로 호흡곤란이 오는 것 같다는 내 말을 유심히 들으신 교수님께서 역류검사를 해보자고 하셨고,
입원한 지 4일 째 되는 날, '심한 역류'로 진단을 받았다. 역류로 인해 젖을 먹기만 하면 일시적으로 기도가 막혀서 호흡 곤란이 온 것이었다.
아들이 태독이라는 건 아이가 입원한 지 3일째 되던 날 밤에 병문안을 온 친한 한의사 친구의 진단으로 알게 되었다. 자기도 교과서에서나 보던 거라고 했다.
어쨌든,,
병명이 밝혀지고 제대로 된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멎고, 며칠 더 안정을 취하야 집에 올 수 있었다.
퇴원을 하고도 한동안 나는 병원에서 렌탈한 아이의 산소포화도 측정기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또 넘어갈가봐 무서웠다.
사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때도 자세한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냥 한바탕 꿈을 꾸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뱃 속에서부터 호되게 앓아 위장 기능이 약해진 아이는 하필이면 입이 짧은 나를 닮게 나왔다.
그것도 나보다 더한, '기질도 예민한' 그런 아이로!
젖을 끊고 미음에서 이유식으로,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면서도, 아이는 잘 먹지 않았다.
먹기 싫으니 입에 밥을 물고 계속 돌아다녔다. 밥 한끼 먹이는데 정말 온 하루가 걸렸다.
뭐든 잘먹는 남편은 '안' 먹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 식사 시간마다 빨리, 많이 안 먹는다고 아이에게 화를 냈지만, 나는 아이를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안' 먹는게 아니라 안 넘어가서 '못' 먹는거라고!"
한참 지칠대로 지켜있던 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나서, 아이에게, 화를 냈다.
애한테 화를 내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던건지... ㅠㅠㅠ
(참, 큰일 날 짓을 했던거다.)
못 먹고 식탁 앞에 앉아만 있거나, 식탁 앞에서 울고 있는 애를 보면 자동으로 내 어린 시절이 오버랩됐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아들을 보면서 불쌍했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었고, 아들에게 뭐라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그런 내 어린 시절을 위로하느라, 그리고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고 싶지 않아
아이를 제대로 감싸지 못했다. 온전히 아이 편을 들어주지 못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안 먹으니 작고, 작으니 더 움츠러드는 아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아이를 못, 먹게 할까. 궁금해서.
아이의 식생활, 아이의 사생활, EBS 60분 부모, 아이의 스트레스, 프랑스 아이는 편식하지 않는다 등등.
수 많은 책을 읽고 난 후의 결론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
식탁에서의 부모의 지적이 아이를 계속 '음식이 넘어가지 않게' 만드는 제일 큰 심리적 원인이었다.
아이가 온전히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를 어여삐 여기셨는지,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생겼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남편은 눈이 열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새로운 마음을 얻었고,
나는 남편이 변화로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제야 아이에게 '엄마가 온전히 너의 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노력을 반복했다.
지금 고3인 아들은,
아직도 입이 많이 짧다.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수용을 해 주고 온전히 내 편인 아빠와 엄마가 생긴 우리 아들은,
하루하루 세상을 도전적으로 열심히, 입시생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렸을 때 많이 안 먹은 아들은 지금 당연히 왜소하다.
마음이 크면서 스스로 키가 커야겠다는 욕망이 생긴 지금은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에 입이 짧은 사람들은 대부분 예민한 듯 보인다.
아마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타고난 성격 때문인 것 같다.
'먹고, 자고, 싸고.' 이 3대 생리적 욕구 중 '먹고, 싸고'가 소화기의 관장 아래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를 1차적으로 담당하는 '위'는 생물학적인 '소화기능' 말고도 교감-부교감 신경계와 함께 인간의 '심리, 정신적인' 부분도 담당한다.
즉, 인간은 죽을 위험이 생기면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킨다. 이때 소화를 담당하는 위도 위근운동을 멈추고 굳게해서 도망갈 준비를 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긴장을 하면 배가 아픈 것이다.
아침마다 학교가기 싫은 애들이 배가 아픈 이유가 이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학교가 편하지 않고 즐겁지 않고, 나를 위협하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니까 위 근육이 굳어 배가 아픈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은 절대 꾀병이 아니다!
입이 짧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더라도,
살림, 특히 요리가 적성에 맞지 않는 특히, 주로 요리를 담당하는 엄마는 부모가 되는 것 중 제일 큰 스트레스로 '아이 먹이는 것'을 꼽는다.
요새는 소아 비만도 많아져서, 너무 잘 먹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가 속이 타기도 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가는 얘기다.
아이가 입이 짧든, 잘 먹는 아이든, 주 양육자가 요리에 소질이 없든,
어쨌든 사람은 먹어야 산다.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일이다.
그러니,
아이를 먹이는 작업,
특히 부모가 처음 된 초보부모들은 우유에서 이유식, 밥으로 넘어가는 그 기간이 가장 힘들고,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는 아이의 기질에 따라 '먹는 비위'를 맞추는 것이 또 너무 힘들다.
하여간,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어째, 공짜가, 없다. 슬프다.
그리고, 아이 덕분에 얻은 가장 큰 하나.
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만큼, 내 아이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이십년쯤 키워보니, 이 문장 하나가 명백한 진실인 것 같다.
P.S 아들,
오늘은... 네가 학교에서 석식을 먹는 날이라 엄마가 너무,, 행복하다. 크크크.
(물론 학원갔다 와서 밤 11시에 밥을 또 찾겠지만 말이다.. )
세상의 모든 부모들, 화이팅!!
* 본 '부모됨은 ____이다.' 시리즈는 2020년 12월 발행된 학술지 『 영아기 첫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모됨 인식에 대한 개념도 연구_열린부모교육연구 14-4-7(심위현,주영아) 』 를 모티브로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출된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로 다듬어진 '부모됨에 대한 88개의 새로운 정의들(최종진술문)'을 인용해, 심리상담과 부모교육 현장에서 느낀 나의 인사이트들을 정리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