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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Aug 10. 2022

워싱 소다

빨래하고 싶은 날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채널에서 베이킹소다를 구워서 세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물에 구운 베이킹소다를 녹여서 스프레이로 뿌리기만 했는데 기름때가 그대로 녹아 흘러내린다.

오~~ 이것은 신세계!!


집에는 베이킹소다가 없고, 구우려고 베이킹소다를 사느니 차라리 완제품인 워싱 소다를 샀다. 주방 청소용 세제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가스레인지의 묵은 기름때를 기필코 다 녹이고 말리라!!  결심만 하고, 워싱 소다만 사둔 지 벌써 2주가 다 되어간다.


 엄가 안 난다는 말은 핑계이다. 그저 귀찮을 뿐. 시작하면 어디까지 손을 대야할지 몰라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럴 거면 워싱 소다는 왜 샀냐고...!


아이가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던 콩국수를 하는 바람에 수납장 깊숙이 들어있던 믹서기를 꺼내야 했다. 깊숙한 무언가를 꺼내면 어쩔 수 없는 흔적이 보인다. 결국 미뤄두었던 주방 청소하는 날이 오늘인가 보다.


 수납장만 하자  마음먹었지만 가스레인지 위의 묵은 기름때가 보인다. 언제 청소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후드 천정의 망은 그야말로 엉망. 기름때가 먼지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후드 지붕, 치킨 집도 아닌데 기름방울 방울 흩뿌려진 벽면...


안 하면 모른 척해보겠지만... 시작했으니 그럴 수도 없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했어야 하는데... 귀찮다고 못 본 척하는 사이에 이 지경이 되어버렸나 보다.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온몸이 땀범벅이다. 겨우 주방의 4분의 1  남짓 공간의 묵은 때를 녹여냈을  뿐인데.


덥고 습한 날씨에 내 몸도 끈적끈적, 가스레인지도 끈적끈적, 창문도 끈적끈적. 쳐다만 봐도 짜증이 나던 가스레인지가 제법 반짝인다. 끈적거려서 손도 대기 싫던 창문틀이 보송해졌고, 벽면이 자기 얼굴을 찾은 것 같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던 주방 청소를 하고 나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묵은 마음도 이렇게 끄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간을 빨아서 널어놓고 왔다는 토끼처럼 머릿속 무거운 것들도 마음속 묵은 찌꺼기들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워싱 소다 뿌리자마자 마법처럼 녹아내리는 기름때처럼 마음의 묵은 때도 녹여낼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로 헹구기만 해도 깨끗해지는 식기들처럼 마음도 그렇게 헹궈낼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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