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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Oct 24. 2021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쉼을 배우다

잠에서 일어나며 감사합니다. 불을 켭니다.

가시는 분 오시는 분 가시는 길 밝혀주듯

아침을 먹어요

아침을 먹어야 기운이 나고

내가 기분이 좋아야

오시는 분들도 마음 편하리라 믿어요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철야를 마친 첫 손님의 방문

고단한 손님에게 집 반찬을 슬며시 들려 보내는 아침.

손님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으면 기분이 좋고

없으면 미안합니다.


-어쩌다 사장 슈퍼사장님의 편지 중에서-



한번도 쉬어본 적 없으셨다는 사장님, 마치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지기처럼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발길과 마음을 밝혀주시는 모습이 너무 따뜻했다.

아둥바둥 공부가 어떻고 진로가 어떻고 머리아프고 복잡복잡한 이 세상의 모습과 다른 ,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따스한 풍경이었다.


도시를 조금만 떠나도 마음은 훨씬 여유로워진다. 외딴 시골은 아니지만 가끔 친정에 다녀올 때면 그런 기분을 느낀다.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 이 곳에 있는 동안은 시계가 째깍거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집에만 돌아오면 마음이 바쁘다. 당장 하지 않는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바쁘고 급한지.




철야를 마친 손님들이 찾아가 마시는 따스한 커피 한 잔

사장님이 싸주신 반찬을 들고 가는 외국인 근로자

걱정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푸근한 마음

그 모든 것이 도시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왜 그럴까.

경계하고 사는 것이 익숙한 나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있으면 좋고

없으면 미안하다는 사장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남는다.

죽을 때 다 싸 갈 것도 아닌 거 알면서, 더 가진다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닌데.

사장님의 마음이 너무나 크고 부러워서

여유 없는 내 마음마저 커지는 느낌이 든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엄마는 수예점을 하셨다. 집에 가면 엄마가 없는 게 싫었던 나는 학교를 마치면 수예점으로 가서 놀다 오곤 했다. 

뜨개질을 배우러 오셔서 수다 떠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연탄을 갈아가며 불을 때웠던 난로 옆에서 먹는 햄버거도 맛있었다. 한참을 놀다가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가다 보면 운좋게 아빠를 만날 때가 있었다. 우리 집은 아빠 직장 옆에 있는 사택이었기 때문에 종종 퇴근하시는 아빠와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하는 나를 위해 12개월 할부를 끊어 피아노를 사주셨고, 피아노 대회를 나가는 나를 위해 엄마는 손뜨개질로 니트 투피스를 만들어 주셨다. 안타깝게 대회는 낙선했지만 돌이켜 보면 가장 그리운 시간들이다.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그리운 시간이다.

어쩌다 사장의 마을 풍경을 보고 있으니 잊고 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이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마음이 힘들어 쉬고 싶을 때 떠오르는 나의 쉼터 같은 시간들이다.


행복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그 때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지금인데 마음만은 더 가난해진 것 같아서 그 시간들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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