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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Oct 24. 2021

내 것인 마음만 가져오자

마음을 걷어오다

정말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다가갔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물러나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나에게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아는 것 말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중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실은 지금 친구의 대부분은 그때 친구들이다. 

나는 사람을 넓게 사귈 만큼의 사교성도 없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이다. 물론 한 번에 마음 빗장을 확 열어버리는 예외적인 관계도 있지만 , 거의 대부분의 친구나 지인들은 오랜 시간 서서히 조금씩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때는 이런 내가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남들은 인친이니 트친이니 그렇게 넓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금이지만, 극도로 경계가 많은 나는 오로지 학교에서 사귄 소수의 친구들과만 친분을 유지한다.


몇 되지도 않는 친구이니 피곤해서 안 나간다고 해도 서운해하지도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내 맘 정도는 단박에 알아채는 편안함은 있다. 하지만 모든 친구가 그렇진 않았다. 




오래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 더 솔직히는 피곤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에 속한다. 가끔 내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속 깊은 고민은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결론이 나지도 않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어, 친구에게 결론을 고민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친구가 어떤 조언을 해주어도 결국 내 생각대로 할 거기 때문에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어쩌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공감해줄 때 친구에게 듣는 고마움의 정서가 또 나름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정 욕구 같은?


그러나, 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해도 대놓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털어버리고 가는 경우는 다르다. 더구나 그 일방적인 얘기가 묘하게 내 못난 자존심을 긁는 이야기라면 더하겠지. 서울에 사는 친구가 코로나 때문에 어쩌면 구조조정으로 빨리 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딸을 유학 보냈는데 아이가 대학을 외국에서 다니고 싶어 한다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뒷바라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서울에서 집도 옮기려면 지금 집 값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안되면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는 하나도 공감이 안되었다. 서울에 집값이 비싸서 지방에 집을 사서 내려오는 것이 그렇게 실패한 삶인가 싶은 못난 억지까지 부리고 있었고, 유학은 커녕 사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내가 한 학기에 몇 천만 원씩 들어가는 국제 학교 학부모의 경제적 고민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매번 그런 고민을 듣다 보니 못난 맘에 작은 내가 스스로 더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친구를 더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그 친구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다. 주었던 마음을 거두는 것도 내 나름의 우정이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 본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라면 걷어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마음도 나눌 수 있을 때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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