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배우다
-나빌레라 덕출의 대사-
손녀 은호의 첫 좌절 앞에 할아버지 덕출은 넘어져도 괜찮다며 손녀의 다친 마음을 호호 불어준다.
무릎이 까져도 안 아픈 척하며 반창고를 붙이고 뛰어야만 했던 은호의 삶에 처음으로 일시정지가 생긴 순간이었다. 대치동 키즈로 태어나고 자랐고, 운전면허 주행시험을 보듯이 정해진 코스만 통과하면 인생의 운전 면허증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삶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답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던 말, 대학만 들어가면 다 해결된다는 이야기였다. 대학에 만능 황금 키라도 맡겨놓은 듯,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고 알았다. 내 진로를 누가 대신 고민해준다는 말인가 그 단순한 진실도 깨닫지 못하고 문제집에서 답을 찾으며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에는 만능 황금 키도 만능 백과사전도 아니 그 비슷한 대안을 찾을만한 것도 없었다. 졸업 후 취업에 난항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 답은 내가 찾아야 함을... 공부만 하는 바보가 되어 그 당연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말이 트였지만, 언어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다쟁이가 되었다. 기다림은 쉽지는 않지만 최선의 해답이었다.
큰 아이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공부만 할 줄 알았던 나는 그런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옛날처럼 대학 졸업장이 취업으로 연결되는 세상이 아니지만, 무작정 진학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나에게 엄마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시켜보라고 하셨다. 그때는 달리 선택지가 없어서 기대 반 포기 반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시작하게 했지만, 내가 했던 결정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진로를 선택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꿈을 꾸게 되었다. 가끔 그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