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도 관성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습관보다 나쁜 습관이 더 그렇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뇌와 몸이 알려준다. 당장의 불안과 고통을 줄여주는 것, 이를테면 술과 약 같은. 건강에는 해롭지만 미각은 즐거운 패스트푸드 같은 것.
습관을 바꾸는 거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리던 자동차가 급커브를 도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타이밍을 놓치고 다시 길이 나올 때까지 달려야 하는 자동차처럼, 습관이 마음처럼 고쳐지지 않을 때 다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습관의 기간이 길고 그 질량이 클수록 유지하려는 저항 또한 커지기 때문에 일정 기간 시도하다가 포기하게 된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이렇게까지 할 만큼 심각한 것도 아닌데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자고 스스로와 타협한다. 작심삼일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금주는 오랜 시간 나를 지배해 온 '음주'라는 관성에 저항하는 일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몸에서 보내는 적신호 덕분에 어쩌다 보니 100일이라는 숫자를 채웠다. 습관이 가진 관성 때문에 금주 한 달간은 힘들었다. 건강 상태가 괜찮았다면 포기했을 지도. 하지만 한 달을 넘어가면서 음주에서 금주로 관성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28일을 넘어가면 유지하기가 수월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새롭게 바뀐 습관을 장시간 유지하게 되자, 뇌와 몸은 금주를 새로운 습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60일을 지나면서 맥주 광고를 봐도 갈증이 나지 않았다.
유퀴즈온 더블록에 노화 관련 의사 선생님께서 '적당히'가 어려워서 아예 술을 안 드신다고 했는데, 나도 '적당히'는 자신이 없다. 한 잔이 한 병이 되는 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 부담을 내려놓기
미라클 모닝을 두 번이나 정독하고 필사를 하며 실천하려고 애썼던 아침 루틴은 금주만큼 어려웠다. 역시 습관이 가진 힘은 대단한 거였다. 아침 기도, 간단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고 메모하는 것까지 30분이 걸린다. 처음에는 독서도 넣고, 좋은 문장을 하나씩 적으며 하루를 다짐하자는 계획도 세우고, 운동 대신 스트레칭 시간도 늘리고 아침 일기도 쓰고 등등,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씩 꾸준히 루틴을 실천하고 출근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쯤이야 하는 생각.
욕심이었다. 아침 기도와 10분 남짓 명상만 해도 벅찬 내가 갑자기 그런 아침 루틴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아침에도 소소한 집안일들은 많아서 그마저도 지키기 쉽지 않았다. 늦잠을 자는 편은 아니지만 6시 이전에 기상한 날은 하루 종일 부족한 잠에 몽롱했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 때문에 취침 시간은 늘 늦어지기기 때문이었다.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 아침 기도도 겨우 하게 될지도.
아무리 좋은 옷도 내 체형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침 일기 대신 간단한 메모,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위한 아침 기도, 간단한 명상과 스트레칭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루틴이었고, 독서는 아침이 아니어도 틈 나는 대로 재밌게 하고 있으니 굳이 바쁜 아침 시간에 할 이유가 없었다. 욕심을 버리고 부담되지 않는 나만의 간단한 루틴을 실천해 나가니 숙제 같던 루틴이 다시 활력이 되었다.
3. 숙제 같은 기록 말고 좋아하는 기록 하기
궁금해서 시작했던 하늘 사진 기록하기, 한 달 정도 했는데 모아 놓으니 예쁘다. 처음엔 이런저런 오글거리는 말도 적고 일기처럼 꾸며 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숙제처럼 느껴져서 사진만 기록하고 있다. 가끔 특별한 날은 몇 글자 정도 더 적기도 한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1년쯤 모아 놓은 하늘을 보는 기분이 궁금하다.
금주 100일 하고 나면 대단히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현실적인 변화로는 맥주값으로 지출되던 비용(15만원~20만원)이 절약되었고, 전보다 활기 넘치는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맥주 대신 식사를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서 두통, 소화불량, 어지러움, 탈모 증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장기간 음주로 망가진 건강에 관심이 생기면서 유산균과 종합비타민을 꾸준히 먹게 되었고, 식사량이 일정해지면서 체중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금주를 무사히 유지하고 있는 제가 조금 기특합니다.
요즘 일주일에 한 장씩 즉석복권을 사고 있어요. 당첨되면 좋고 떨어져도 좋은 곳에 쓰인다고 하니까. 일부로 기부할 일 없는 저는 간접적으로 좋은 일 하는 기분도 듭니다. 당첨되신 분들 인터뷰를 가끔 읽는데요. 공통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꾸준히 소액으로 구입하셨다고, 되면 좋고 안되어도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니까요.
언젠가는 당첨될 거라는 기대가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 원, 이천 원짜리 복권 한 장 사면서 희망을 가지는 거죠. 희망이 있어야 하루를 살아갈 힘도 생기니까요. 실망하더라도 다시 가지면 되는 게 희망이니까.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더군요.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 동안 행복했다가 다 먹고 나면 사라지는 게 행복이라고. 영원히 행복하지도 영원히 불행하지도 않은 게 삶이라고요.
행복해지고 싶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면 되는 거였어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정도 돈만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는데, 너무 거창한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면서 행복의 맛을 느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뉴스 보기 무서울 만큼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요. 행복해지는 습관도 꾸준히 들이면 관성이 생기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