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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Nov 27. 2023

금주일기 7

금주 192일차 : 금주가 아니라 금욕 중입니다.

금주 시작 후 100일이 넘어가면서 금주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어요. 술 끊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맥주 광고를 봐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이대로라면 조절하지 못할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신기합니다. 맥주를 매일 마시던 제가 겨우 몇 달 금주했다고 맥주를 멀리할 수 있다니. 가끔 다른 술이 당기는 부작용이 불쑥 찾아오기는 합니다. 장사천재 백선생을 보다가 막사가 당기는 정도? 맛있겠다 정도? 격렬하게 먹고 싶다 까지는 아닌 거 같아요.



금주는 술 마시고 싶은 욕구를 누르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이어트 기간 동안 군것질을 참는 것처럼,

문득 궁금합니다. 다른 욕구도 가능할까요? 이를테면 보고 싶은 공연을 못 봐도 다음이 있으니 괜찮고,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생존에 필요한 물건은 아니니 잠시 보류고, 인간 관계도 더 라이트 하게 조금 더 미니멀하게,  

이러다 무욕구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욕구가 없어지면 하지 못해서 불행하지는 않을 거 같아서요.




맥주를 마시던 시간이 비워지니 다른 것들로 채우게 됩니다. 띄엄띄엄 쓰던 책 리뷰를 좀 더 열심히 쓰고, 읽다 말던 책을 완독 하고, 집안의 묵은 들도 눈에 보입니다.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을 소중히 더 자주 사용하고 싶어서요.


엄두도 안 나던 수납장부터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 없는 폐기물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고장 나서 한쪽에 세워 두었던 대형 tv를 처리하려니 운반조차 할 수 없었는데 폐가전을 무료로 수거해 주는 곳이 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용을 지불해도 처치곤란인 물건을 집까지 와서 수거해 주시다니,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오래된 액자와 앨범을 정리했어요. 쓸데없이 액자는 왜 그렇게 크고 많은지, 재활용도 되지 않아서 앨범의 사진을 모두 떼어내도 비용을 지불하고 폐기물 처리했어요. 디지털 사진이 나왔기에 망정이지 모두 현상해서 앨범으로 만들었다면 만만치 않았을 거예요.

추억도 미니멀하게 보관하니 가벼워집니다. 너무 많아서 장롱 속에 두어야만 하는 추억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사용하지 않지만 멀쩡한 물건은 나눔과 당근판매를 했어요. 버리기엔 아까워서 시작했는데 제법 쏠쏠하게 팔려서 은근 재미있어요.

나눔 받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받으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구를 위한 자원 재순환에 동참하는 것 같아 보람도 느껴집니다.




술의 지분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는 일은 즐겁습니다. 비움, 왜 하시는지 알 거 같아요.

묵은 물건을 정리하고, 당근에 팔기 위해 닦고 작동이 되는지 확인하고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으면서 보지 못했던 예쁜 모습을 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옷장에 걸어뒀는데, 판매를 위해 여러 가지 소품과 옷으로 코디하면서 보지 못했던 예쁜 부분이 보입니다.


버리는 일이 힘든 만큼 사는 일도 고민하게 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연하게 사던 옷, 음식이든 소모품이든 떨어지기 전에 채워놓아야 마음이 놓였는데, 하루쯤 부족한들 무슨 큰 일겠나 싶어요.


비움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인가 봐요. 필요한 것들만 소중하게 사용하고 잘  정리하는 일 말이죠.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소용이 되는 물건들에게 감사하며 사는 일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용이 되는 존재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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