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
비정형 유관증식증과 상피내암은 한 끗 차이, 의사 소견에 따라 양쪽 모두 진단이 가능한 경계라고 볼 수 있다. 유관 내에 정형세포가 쌓이는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비정형(정상적이지 않은 ) 세포들이 유관 내에 증식하는 것은 암 전조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은 매우 초기의 암세포들의 흔적이 미세석회의 형태로 유방촬영에서 관찰되고, 수술적 절제가 필요하다.
비정형세포들이 증식을 계속하여 유관을 가득 채우게 되면 상피내암, 일명 제자리암이라고 부르는 유방암 0기. 유관 밖으로 증식을 계속할 경우, 침윤성 암으로 발전, 다른 장기로 전이된다.
제 경우 비정형 유관증식증과 상피내암의 경계성에 있는 병변으로 수술적 절제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상피내암의 경우 림프절 전이까지 확인해야 하지만, 저는 다행히 병변이 있는 부분만 제거할 거라고 하셨어요. 전절제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림프절까지 절제하지 않으니 더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절제 부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주변 지방 조직으로 채우지 못할 경우 인공 진피 조직으로 채울 수 있는데 비급여인 만큼 비용이 꽤 비쌌어요. 보험 회사에서 미용 목적으로 볼 경우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20대도 아니고, 나만 보는 가슴 좀 꺼진 게 대수냐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 생각이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지난 조직 검사로 이미 일부분 살짝 꺼진 부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이상했거든요. 이런 게 상실감인가 봐요.
전날 시술을 받고 다음 날 수술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세 군대 침으로 고정했고, 세 번의 마취를 했어요. 조직 검사 때 아팠던 기억 때문에 마취를 충분히 해달라고 부탁드렸고, 많이 아프지는 않았어요. 출혈도 꽤 있었고 불편한 통증이 없지는 않았지만 참을만했어요. 시술 후 엑스레이 촬영을 해서 침이 제대로 꽂혀 있는지 확인, 교수님 설명을 들으며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잘 꽂혀 있더군요.
딸이 보호자 동의 및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들었는데, 아이한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유륜 주사의 통증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수술은 아침 첫 시간,
병실로 오자마자 진통제와 마취 후유증을 가라앉혀 줄 위장약 주사를 맞았어요.
30분 정도 엄청난 통증과 싸우며, 몸속에 남아 있는 마취가스를 내뱉는 호흡을 계속해야 했어요. 잠들면 안 된다고 , 4시간 정도 반복했어요. 통증이 그렇게 심해도 남아 있는 마취 가스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기를 두세 번, 아이가 잠들지 말라고 깨우면 다시 눈 뜨기를 반복했어요. 처음 느꼈던 통증이 10이라면 진통제 맞고 30분쯤 지나니 5-6 정도로 줄었고, 오후에는 움직이지 않으면 참을만한 통증이라 진통제도 저녁에 한 번 더 맞은 게 다였어요. 사람 몸이 참 신기합니다. 하루 만에 통증이 가라앉는 걸 보면서 내 몸의 회복력에 놀랐습니다. 상처 통증보다 오히려 두통이 더 심해서 힘들었어요. 두통약을 2-3일 계속 먹으며 두통을 가라앉혔습니다.
부분절제한 부위가 넓었다고 하셨고, 최대한 꺼지는 부분 없이 마무리하셨다고, 수술로 절제한 조직의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정도 압박 브라를 착용해야 합니다. 요즘 같은 더위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정도가 어디야 감사해야겠지요. 배액관도 달지 않았고, 드레싱 만으로 치료가 끝났으니. 흉터는 남을 거라고 연고를 따로 처방받았습니다.
퇴원 후, 차일피일 미루던 냉장고를 구입했습니다.
20년이 되었으니 이상이 생길 만도 하죠. 이상 증상을 보인 지 1-2년쯤 되었는데 당장 목돈 나갈 게 걱정돼서 미루었더니 상한 우유를 마시는 일이 생겼어요. 20년 된 냉장고는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갑자기 아픈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아닌 거 같아요.
냉장고 속 아이스크림이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반찬통에 성에가 끼는 것처럼 조금씩 신호를 보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상한 우유를 마시고서야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아차리니 너무 늦어버렸어요.
냉장고는 버리고 새로 사면 되지만
내 몸은 버리고 새로 살 수가 없으니 더 문제입니다.
수술 전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추가 조직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한 달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르겠어요. 전절제를 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 한쪽 가슴이 없는 모습을 거울을 보며 여러 번 상상해 봤어요. 지금껏 내 몸을 이렇게 열심히 관찰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이제 나이 들고 미워진 몸, 뭐 그리 애틋할까 싶었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수술로 절제한 조직에 대한 검사 결과가 아직 남아 있어요.
여전히 두렵습니다.
검사 결과가 좋아도 나빠도, 재발에 대한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밤이 길어도 아침이 온다고 하죠.
그렇다고 밤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밤이 찾아오면 아침을 생각하며 밤을 달래고,
아침이 찾아오면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두려움과 고마움의 감정을 영원히 안고 살아가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