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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Jul 14. 2024

암이야기 3

내일이라는 기적, 오늘치의 행복

이틀에 걸쳐 수술 전 검사를 했습니다.

첫째 날, 채혈, 소변검사, 흉부 X-ray, 심전도 검사는 간단해서 금방 끝날 줄 알았어요. 일찍 도착했지만 검사하는 분들이 많아서 대기 시간이 길어져 오래 걸렸어요.

뼈 골밀도 검사를 하기 위해 뼈 스캔 주사를 맞은 후, 복부 CT, 폐 CT를 찍었어요. 조영제가 들어갈 때 몸이 뜨거워지고 속이 메슥거리며 어지러웠지만 참을 만했어요. 뼈 스캔 검사를 마지막으로 첫째 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둘째 날, MRI 촬영 시간이 상당히 길었어요. 귀마개를 해도 소음이 엄청났어요. MRI 판독 후에 초음파 촬영을 했고, 초음파 결과 확인 후 X-ray 확대 촬영, 또다시 초음파 촬영, 다시 X-ray 촬영까지 반복 과정이 길었습니다. 전날 검사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어요.


치료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친 기분이었습니다.




검사 결과 확인 수술 일정을 듣기 위해 1주일 후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전날 많이 심란했어요.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전 병원에서 검사한 조직 슬라이드 재판독 결과가 조금 다른가 봐요. 세포이형은 확실하나 상피내암이라 보기에 애매한 상황, 이런 경우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을 먹으며 추적 관찰을 하기도 한다고, 그럼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잠시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전 병원에서 검사하지 않은 부위에서 발견된 미세 석회의 양상이 좋지 않아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고 ,

다시 원점입니다.

일주일 후 맘모톰 조직 검사를 하고, 또 피 마르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술비는 전액 비급여이므로, 실비 청구를 위해 입원을 해야 했어요. 입원실이 없으면 1인실을 사용해야 한다는데, 비싼 입원실료를 생각하면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습니다. 검사결과만큼 무서운 건 역시 돈입니다.




일주일 후, 다행히 5인실에 입원했고, 조직 검사를 했습니다. 마취 주사를 맞으니 통증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 마취가 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었어요. 얼마나 힘을 주며 참았던지 검사가 끝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피가 고여 있으면 안 되어서 지혈 시간도 꽤 오래 걸렸어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세 분이 있는 힘껏 압박해서 지혈해 주셨고, 가슴뼈가 다 으스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의 압박이었어요. 고통스럽고 힘든 시술이었어요. 지혈이 끝나고 압박붕대로 가슴을 단단히 동여매고 나니 등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처럼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이 병은 검사 과정부터 쉽지 않군요.




병실에서 암 수술 후 치료 중인 환자분들을 만났어요.

세 명 중 한 명이 암이라는 이야기가 조금씩 실감이 납니다.  치료받을 수 있으니 받고, 먹을 수 있으니 먹고, 더 나쁜 상황이 아님을 감사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끝나지 않을 거 같던 힘겨운 시간도 끝난다고 하셨어요.

여행 오는 기분으로 캐리어를 끌고 입원하러 온다고 하셨어요. 잠깐이지만 친절하고 좋은 분들을 만난 걸 보면 인연복은 있나 봅니다. 실비 때문에 입원했는데 통원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집에서 대학 병원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거리입니다. 서울까지 치료받으러 다니는 건 저는 엄두도 못 낼 거 같아요. 


지방에 대학 병원 같은 상급 병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광역시에 의료 서비스 공급이 원활해져서 인근 소도시를 비롯 많은 지역민들이 서울까지 힘든 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치료받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서울까지 왕복한다는 건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유방암 카페에 가입했다가 하루 만에 탈퇴했어요. 무조건 서울을 가야 한다. 이런 치료법이 어떻다더라, 넘쳐 나는 정보가 오히려 독이 되는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가능한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함인가 싶어요. 내일이 찾아오는 건 너무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기적인지 모릅니다. 왜 나는 10년 20년 후의 시간이 당연히 내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오늘 내가 누리는 것들은 내일의 내게 허락되지 않을 행복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오늘치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의 불안이 가 온갖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걱정하느라 매일매일을 도둑맞는 대신,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게 ,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인 거 같아요.


4일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전까지의 지금이

결과를 듣고 난 후의 시간보다는 더 행복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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