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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Oct 29. 2021

손편지

손으로 꾹꾹 , 마음을 눌러 담아

필사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처음으 해 보았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모르겠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건 손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간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손글씨를 쓰지 않았나 보다.


내가 이렇게 글씨를 못 썼던가?

아닌데? 난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제법 글씨를 예쁘게 쓴다는 칭찬을 받았다. 내가 봐도 나쁘지 않은 글씨였다.


분명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없어지면서 간단히 몇 줄 적는 글씨도 삐뚤빼뚤해졌다.



손편지 대신 메일과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손글씨 대신 워드로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는 동안 나는 악필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쓴 편지가 언제였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우리는 손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친구의 옆구리 쿡쿡 찔러가며 전달하던 짧은 쪽지부터 , 혼자만의 새벽 감성에 취해 적어 내려갔던 긴 편지까지,

많이도 주고받았다.


반이 바뀌다시 못 만날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편지로 서운한 마음을 대신했다.

(누가 보면 유학이라도 가는 줄 알았을 거다. ㅎㅎ)


사소한 오해로 친구와 냉전이 있을 때도

(당시의 나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손편지가 오해를 풀어주었다.


학교  마당에 벚꽃이 활짝 피어 꽃잎이 날릴 때면, 빨강머리 앤이라도 된 듯 이유 없이 벅찬 마음을 친구와 나누고 싶을 때도, 비가 와서 이유 없이 우울한 마음을 나누고 싶을 때도,


괜스레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 갑자기 철학자 흉내를 내고 싶을 때도 우리 사이엔 손편지가 있었다.


마니또 게임이란 것도 있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예쁜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이 사물함에 들어 있었다.

누굴까? 글씨로 추리를 해보는 재미,

아직 친해지지 않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친구였으면 하는 바람, 선물을 뜯어볼 때의 설렘,

그때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야자를 해도 즐거웠고, 주말에 학교를 가도 재밌었다.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예쁜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을 때면 연애편지도 아닌데 얼마나 설레던지.

우편함에 꽂혀 있는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두근거림은 또 얼마나 행복이던지.


필사를 하다 말고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억해주는 듯해서 짧은 쪽지 하나까지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었는데...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아쉽다.


그렇게 예쁜 맘으로 다시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편지를 받을 친구의 표정을 상상하며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옆에 앉아 그런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썼다 지웠다했던 흔적까지 소중했던 손편지가. 가끔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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