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안고,
가볍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살아온 시간 속에서 알게 된 슬픔과 아픔은
나를 깊게 해주는 경험으로
소중하게 끌어안고.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 본문 중에서
언젠가 곧 50대가 될 나에게 아이가 선물해 준 책이다.
리뷰를 꼼꼼히 다 읽어보며 몇 달을 고민했다는 아이 말에, 읽기 전부터 이미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10대에서 20대가 될 때는 설렘이 있었다.
긴 수험 생활의 끝을 보상받고 싶었을 수도 있고,
대학생활이라는 '핑크빛 판타지'였을 수도 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말만 믿었던 10대 소녀는 꿈을 꾸었다. 청춘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나도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까 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개구리의 꿈같은 거.
20대 중반까지는 나름 설레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커리어 우먼도 될 수 없었고, 멋진 선배를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때의 나만큼 나를 사랑했던 시간이 없었다. 자신감이 있었고, 거울 속의 내가 꽤 예뻐 보였고, 사람들과의 시간들이 행복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좋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30대로 들어서면서 지독하게 내가 미웠다. 결혼과 함께 찾아온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이 모두 나의 경솔한 선택의 죗값인 것만 같아서 아이들을 사랑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내 바람이 있다면 빨리 늙는 거였다. 얼른 살아버리고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내 결혼은 끔찍했다. 내 삶에서 통째로 잘라내어 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
40대가 되면서는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내가 가여웠다.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결혼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찾으면서 조금씩 버틸 기운이 생겼다. 다 버리고 싶어도 아이들만은 내게 분명 과분한 존재였다. 이 아이들을 만나려고 결혼이라는 사고를 당했구나, 그런 마음이 들면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50대가 가까워지면서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책에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글들로 가득하다. 나를 짓누르던 슬픔과 아픔마저 삶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글이 위로가 된다.
세월이 더해지면서 알게 되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예컨대 삶의 모습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곱게 늙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나를 떠올릴 때 편안함이 떠올랐으면,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바람이 생긴다. 불안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50이 되면 그런 여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마도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아픔이 있다는 것.
아픔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시간을 깊이 있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든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나의 시간입니다.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느끼고, 받아들일지는 스스로 결정해도 됩니다.
20살은 20살의, 30살은 30살의, 50살은 50살의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을 겁니다.
-본문 중에서-
50대가 되면 나도 내 아픔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내가 아파서 지금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슬퍼서 지금은 슬픔에 대해 초연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좋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