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유니폼은 개성을 지운다고 생각하지만, 유니폼은 한 회사의 특수한 정체성을 반영하기에 개성을 더 드러내는 옷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유니폼이 그렇다. 특별하다. 유니폼 이상의 상징성이 있다. 절제된 엄숙함과 우아한 이미지를 잘 반영하였다.
에어프랑스 유니폼은 프렌치 감성이 담겨 있다. 크리스천 디올, 발렌시아가, 니나리치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프렌치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유니폼을 1933년부터 90년에 걸쳐 선 보여 왔다. 1946년에 최초 여승무원을 모집하고 프랑스 군대 및 적십자에서 고용되었음을 고려해 군복 느낌을 살려 디자인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착용하고 있는 유니폼은 클래식하고 시크한 파리지앵 느낌을 가득 담았다. 짙은 네이비 컬러에 여성미가 있는 선명한 레드 리본 장식 허리벨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모두 있다. 게다가 재킷, 치마, 원피스, 바지 등 색상도 아이템도 다양해서 믹스매치를 해서 착용 가능하다. 대한항공 유니폼도 국내 최초로 바지 유니폼을 선보여 다양함을 추구했다.
에미레이트 항공 유니폼에는 사막이 담겨 있다. 사막에는 작렬하게 타오르는 태양, 수시로 부는 모래바람, 바람에 흩날리며 지형이 끊임없이 변하도록 만들어 주는 모래가 있다. 태양은 붉은 모자를 바람은 스카프를 모래는 황토색 복장 이 세 가지를 상징하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 유니폼은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전통적인 장식과 현대적인 스타일의 조합은 고객서비스 및 항공사의 명예에도 기여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승무원 유니폼 1위에 자주 꼽힌다
과거의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서울 강서구 소재 대한항공 본사 객실승무본부로 보통의 회사원들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유니폼으로 환복을 하고 비행준비를 한 후 승무원 전용 대한항공 셔틀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로 이동해 비행기가 주기되어 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29일 인천공항 개항과 동시에 승무원들은 각자 유니폼을 착장 한 채 출근을 해서 대한항공 인천 오퍼레이션 센터로 향해야 했다. 2001년 3월 29일 첫 인천 도착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 3423편 방콕발 인천 오전 5시 도착 비행기였고, 첫 인천 출발 비행기는 대한항공 621 인천 오전 8시 30분 발 마닐라행 비행기였다. 그렇게 출근 매뉴얼이 바뀌고 첫 출근을 하는 날 이 일은 나에게 적잖이 불편감을 안겨주었다. 2005년 비 오는 어느 날 새로 바뀐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는 날 서울에는 비가 왔다. 승무원이 유니폼을 입고 우산을 접고 버스를 타는 출근 모습이 3대 일간지 일면을 장식하는 일도 있었다.
1930년 미국 보잉 항공이 여성 승무원을 최초로 비행기에 탑승시켰다. 그전까지는 미국과 유럽의 여객기 승무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 보잉사의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엄격한 외모 기준을 통과해야 했다. 키는 5피트 4인치(162cm) 이하, 몸무게는 118파운드(51.2kg) 이하, 20~26세 미혼 여성이어야 했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다.
하늘의 푸르름을 한껏 품은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11 번째 유니폼을 2005년부터 현재까지 착용 중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 상감청자의 한국적 이미지와 잘 맞는 밝은 색으로 유니폼에 반영되었고 비녀를 연상시키는 헤어 액세서리와 비상하는 느낌의 스카프를 활용하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페레”에 의해 탄생되었다. 그는 밀라노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데뷔했다. 크리스천 디올 수석 디자이너였으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위대한 디자인은 시간이 흘러도 동 시대성을 갖고 사랑을 받는다. 대한항공 현재 유니폼도 그렇다. 승무원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천공항 개항과 함께 대한항공에는 회사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CEO와 임직원의 세대교체가 있었다. 그리고 국내외로 유니폼 행사도 크게 하며 대한항공은 이미지 쇄신을 도모했다. 대체로 유니폼 색상은 어둡다. 과거 대한항공 유니폼도 그러했다. 기내라는 환경의 특성상 오염에 취약해서 그렇다. 그런데 한복과 청자에서 착안 백자색과 청자색이 메인 컬러다. 화사하고 밝다. 메이크업도 헤어도 네일도 액세서리도 밝게 변했다. 대한항공은 서비스면에서는 우아함과 단정함을 추구한다. 또한 안전 면에서는 절제미가 있다.
내가 최초로 입은 유니폼은 김동순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입사했을 때 작용했던 10번째 유니폼은 대한항공을 상징하는 대표 최장수 유니폼이다.
승무원준비를 하면서 나의 가장 큰 로망은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는 것이었다. 나는 최종 면접을 앞두고 처음으로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감색 재킷과 치마 미색 블라우스를 입고 리본을 맸다. 한 올 한 올 가지런한 머리와 고운 화장은 미용실에서 받고 왔다. 어딘지 어색했지만 이미 나는 승무원이었다.
최종 면접 날,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면접관과 만난다. 현직 승무원 선배가 마지막으로 리본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내가 리본 매어준 지원자가 합격했으면 좋겠네!”
귓가에 맴도는 그 목소리는 미래에 대한 축사 같았다. 나는 허리를 바로 세우고 가슴을 쫙 펴고 다 잘 될 거라고 자기 암시를 했다. 모르는 이의 응원에 용기를 얻었다. 나는 합격 부적을 받은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다섯 명의 지원자가 한 팀이 이었다. 나중에 신입 교육을 받을 때 그 선배가 리본을 매어 주어서 그랬을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셋은 서로를 알아봤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만나는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때부터 24년 간 승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내게 찾아온 필연적인 사건은 아니었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나는 화려하거나 디테일이 많거나 컬러풀한 패션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색상은 보통 화이트 베이지 그레이 네이비 블랙 등의 무채색을, 디자인은 최대한 심플하고 심심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래서 집단 안에서 무난하게 잘 녹아드는 것일 수도 있다. 종종 ‘교복이냐’ ‘스티브 잡스냐’라는 말을 들 때가 있지만 화려함보다는 실용적인 옷을 입는 것이 편하다.
가끔은 유니폼이 주는 익명성에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니폼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특별한 나를 만들었다. 25명의 승무원이 유니폼을 입으면 25개의 다른 스타일이 나기 때문이다. 내가 입으면 차분하고 가라앉은 스타일이 된다. 갓 입사한 신입 승무원이 착장을 하면 차분하지만 싱그러운 스타일이 된다. 헤어핀, 스카프, 블라우스, 카디건, 재킷, 바지, 치마, 티코트, 장갑, 신발까지 스무 개 남짓의 같은 조각으로 다른 완성품이 탄생한다. 유니폼이 그 사람의 개성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는 것이다.
각자 모두 다른 날개가 된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비행에 임하는 그 순간은 모두가 하나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이 된다.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유니폼은 유행이 짧아지고 실시간 유행이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20년이라는 시대를 견뎌온 시대 감수성이 녹아있는, 그런 품격이 있는 옷이다.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 시간은 나한테 특별한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회사를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는 그런 자격 말이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마다 좋은 기운이 자랑스러운 기운이 나 스스로에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