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가 한국에 보내는 500년 된 예언
태평양 너머 머나먼 이곳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균열이 선명하게 비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공정의 가치는 희미해졌고, 도처에 불평등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한 단어를 떠올린다. 그것은 ‘소멸’이라는 완곡한 단어 뒤에 숨겨진 본질, 바로 ‘지방의 식민지화’다.
내가 살고 있는 중남미의 풍경은 이 불평등의 끝이 얼마나 처참한지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이곳의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격차가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설계된 '구조적 유산'이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심어놓은 두 가지 치명적인 씨앗이 그 기원이다.
첫 번째는 노동과 땅의 착취를 정당화한 ‘엔코미엔다(Encomienda)’다. 정복자들에게 원주민의 노동력을 부릴 권리를 준 이 제도는 훗날 거대 농장 체제인 ‘아시엔다(Hacienda)’로 진화했다. "땅을 가진 자가 인간의 영혼까지 지배한다"는 이 논리는 중남미의 비극적인 부동산 독점의 시초가 되었다.
두 번째는 신분의 벽을 세운 ‘카스타(Casta) 시스템’이다. 그들은 피부색과 혈통에 따라 16단계 이상의 신분을 나눴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지배층은 담장 안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를 공유하며, 담장 밖의 이들을 ‘통제해야 할 타자’로 여긴다. 이 지독한 심리적 단절이 중남미를 하나로 묶지 못하는 거대한 암초가 된 것이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중남미가 한국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자원과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조건만 본다면 중남미는 진즉에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잠재력조차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덫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가 희망을 잃은 사회에서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고, 국가는 성장 대신 내부 갈등과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자원의 풍요가 오히려 독이 된 '불평등의 저주'인 셈이다.
슬픈 예감은 여기서 시작된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성벽으로 모든 자원과 인재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나는 중남미가 경험했던 ‘공간적 착취’의 그림자를 본다.
과거 중남미에 아시엔다가 있었다면, 오늘날 한국에는 ‘서울 아파트’라는 자산의 성벽이 존재한다. 어디에 사느냐가 계급을 규정하는 ‘부동산 신분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방의 내부 식민지화다.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본국은 지방으로부터 가장 소중한 자원인 ‘청년’을 끊임없이 수탈한다. 지방은 인재를 키워 수도권으로 보내는 공급 기지로 전락했고, 남겨진 지방에는 ‘소멸’이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있다.
지배와 피지배의 인식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성벽 안의 조롱과 성벽 밖의 증오 사이에서 정치적 선동가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사회 구석구석 널려 있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불평등은 가만히 둔다고 치유되는 상처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고착화되어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독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표상의 성장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국가 차원의 강력하고 세밀한 개입 없이는 선진국이라는 이름표는 그저 허울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이 비극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과거 정부에서 수도 이전과 지역 균형 발전을 시도했을 때,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성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 그들의 반대 앞에 국가의 균형 잡힌 미래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많은 국민이 깨닫기 시작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가 낳은 저출산과 경쟁의 늪이 결국 우리 모두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외로웠던 노력이 이제야 비로소 전 국민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현 정부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많은 정책들이 그동안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아 온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으로 보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눈앞의 갈등을 봉합하는 수준을 넘어, 무너진 사다리를 복원하고 공간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믿는다. 이러한 정책적 동력이 멈추지 않고 사회 전반의 시스템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평등 해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존립을 위한 생존 전략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서울이라는 성벽 안의 평온함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가?
실질적인 ‘지방 분권 시대’를 열어 지방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생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식민적 구조를 깨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의 리더들이 이 구조적 해결을 외면한다면, 우리 역시 중남미처럼 성벽 안팎의 증오 속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평양 너머에서 보내는 더 많은 시선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본질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 다룬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에 대한 더 구체적인 분석, 그리고 경제·인문학·글로벌 정세를 아우르는 날카로운 통찰을 저의 티스토리 블로그 [태평양 너머의 시선]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젊은 층과 중년층이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통찰력을 길러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글쓰기의 목적입니다. 브런치에서 다 못다 한 깊이 있는 데이터와 현장의 기록들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저의 또 다른 시선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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