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 경찰관의 기록>
<이 글은 현직 경찰관이 지구대 근무 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지구대 지령대 알림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코드 1.'
“아파트에서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난다”는 신고였다.
신고자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고 했고, 소리가 난다는 집에는 노부부 둘만 산다고 했다.
허투루 넘길 수 있는 신고는 아니었다.
이 시간대 둔탁한 소리는 대개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정 내 큰 싸움이거나, 어떤 이유로든 인명 피해가 있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아파트 복도에 도착하니 신고자라는 사람이 복도 앞에 있었다.
“지금은 조용해요... 평소보다 소리가 더 컸었어요.”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다.
문을 두드렸다. 조용하다. 인기척이 없다.
문만 열리면 상황 파악은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난감해졌다.
혹시 이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약 30분 경과.
경찰서 상황실과 논의 후 결국 ‘강제개방’을 결정했다.
강제개방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다.
충분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파손된 문에 대한 보상도 경찰이 해야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도 부담이 큰 선택이다.
현장에 대기 중이던 소방 구조대에게 협조를 구했다.
“문 열고 들어갑시다.”
소방관들은 서로 얼굴을 한번 바라본 뒤 다시 물었다.
“문,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진행할까요?”
그들도 쉽지 않은 결정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루가 들어가고 망치가 내려쳤다.
둔탁한 충격음이 복도를 넘어 아파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정도 소음이면 누군가 나올 법도 한데, 복도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옆집, 윗집에서의 아무런 항의도, 시끄럽다는 112 신고도 없었다.
철컥.
자물쇠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소방구조대와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다.
거실, 안방, 작은방, 베란다, 부엌, 보일러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사람은 없다.
분명 노부부가 산다던 집이었는데.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순간,
작은방 벽장 안에서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전라의 남자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저씨가 이 집주인이세요?”
“예… 맞는데요. 근데 왜 이러는 거예요? 왜 남의 집을 다 부수고 그래요!”
상황을 설명하려다 잠시 말이 막혔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반바지를 찾아 급히 입었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신고 경위부터, 여러 차례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던 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초인종 소리 들으셨다면서요. 왜 문을 안 여셨어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사채업자들인 줄 알았습니다…
경찰이라고 속이고 들어올까 봐… 무서워서 벽장에 숨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술 마시고 들어와 조용히 잠잔 것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막기 위해 사채를 썼고,
그 뒤로 협박성 문자와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대화중 간간히 수신된 채무 독촉 문자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게 그 새벽의 초인종은
구조의 신호가 아니라 공포의 전조였던 셈이다.
옷을 벗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근데… 왜 옷은 다 벗고 계셨어요?”
“저는 잘 때 원래 다 벗고 잡니다.”
말한 자신도 멋쩍은지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어루만지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만큼 급박하게 숨을 곳을 찾았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남자와의 얘기를 마치고 나오던 중 진열장에 열 맞춰 진열된 양주병과
작은방 거치대에 걸쳐져 있는 여러 대의 낚싯대도 보였다.
이 남자 피해 다니면서도 '할 건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새벽 소동은 예상과 달리 다행히 허무하게 끝났다.
남자의 집을 나선 후에야 문 열기 전까지 우리 곁에 붙어 있던 최초 신고자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지구대로 돌아와 사건을 정리하면서도
벽장에서 걸어 나오던 그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잔뜩 겁에 질린 눈빛,
우리가 진짜 경찰임을 알고 내쉬던 안도의 한숨,
허겁지겁 바지를 다리에 끼워 올리다 중심을 잃어 한 발로 깽깽이 뛰던 모습.
그 남자의 출입문은 통째로 교체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다.
보상 절차를 안내해 주긴 했지만
그에게 그 비용보다 더 큰 짐이 이미 얹혀 있는 듯 보였다.
가끔 그 아파트 근처를 순찰하다 보면 문득 생각난다.
그날처럼 또다시 누군가의 초인종 소리에
벽장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아직도 궁금하다.
"그날 밤 신고자가 들었던 망치소리는 어디서 누가 낸 무슨 소리였을까?, 그리고 신고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