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르고 배 고픈 나에게

by 숙단

숙단(叔旦)


아직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지


며칠 전에도 넌 저녁밥을 먹자마자 책상 앞으로 가 앉았지. 무언가를 애타게 들여다보는 네 모습은 꼭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어.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컴퓨터 전원을 켜고 또 무엇인가에 몰입하더라. 그렇게 쉴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너를 보며, 나는 묻고 싶었어. “이제 좀 쉬면 안 될까”


아내가 이제 은퇴도 했고,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알아. 너의 마음 한편에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지난 34년의 공직 생활, 그 이후 이어진 2년의 사회활동까지. 수많은 결정을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가족’과 ‘공적 책임’을 위한 것으로 채워왔잖아.


네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그 긴 시간 동안 대부분 뒤로 미뤄졌지.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니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그래서 결국 너 자신에게 인색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 어쩌면 덜 부지런해서 그런지도 모르지.


테니스도 꾸준하지 못했고, 남들 다하는 골프는 하다가 말았지. 해외여행은 사치라며 남들에게 양보만 하다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잖아. 나이를 먹으니 머리칼이 희어지고 이마는 점점 넓어져 세월의 자취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그조차 돌볼 틈 없이 살아왔지.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근래 모임 자리에서 나처럼 늙어가는 친구의 얼굴을 마주하니, 보기가 참 민망했었지. 그 친구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너는 결심했잖아. 이제는 조금 달라지자고. 가발을 쓰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많이 놀랐지.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동생인 줄 알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거울 속 네 모습이 달라졌다는 걸 너도 느끼고 있잖아. 외모에 손을 대는 일이, 결코 사치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야. 자신을 위해 조금 써도 된다는 걸, 이제야 배우고 있는 거지.


그리고 2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너의 삶에 새로운 길을 내고 있어. 그렇게 조용히 앉아 글을 쓰는 시간, 그게 바로 네가 오래도록 바랐던 ‘나를 위한 시간’이잖아. 퇴직 이후 도서관을 제2의 집으로 삼겠다는 다짐, 나는 참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해. 그 공간이 너를 쉬게 해 주고, 다시 너를 채워줄 테니까.

언젠가 손자와 손녀가 태어나면, 함께 도서관에 가겠다고 버릇처럼 말했었지. 책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고단한 인생의 쉼터가 되길 바란다고 한 다짐을 꼭 지켰으면 좋겠어.


그러니 오늘도 조용히 네게 말하고 싶다. 그래, 아직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건 살아 있다는 증거야. 하지만 그 허기를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해 채워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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