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단(淑旦)
살아계신다면 구순을 바라보실 연세.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힘겨웠던 십 대 시절에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신 고마운 선생님이셨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일부러 암기과목 시험에서 틀린 답만 골라 적었다. 결과는 당연히 영점이었다. 당시 역사 과목을 가르치시던 김평수 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불러 물으셨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 무슨 일 있었나? “
"그냥 시험을 치기가 싫어서요!".
혼낼 법도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시더니,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짧은 당부와 함께 채점 대신 50점을 적어주셨다. 나는 그 답안지를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중학교 시절은 내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공납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분기마다 벌어졌던 공개적인 체벌이었다.
"아직까지 공납금 안 낸 놈들은 당장 앞으로 나와 엎드려뻗쳐!".
담임선생님은 다섯 명의 학생을 교탁 앞으로 불러내 몽둥이를 드셨다. 무겁고 단단한 그 몽둥이는 다섯 대씩 엉덩이를 내리쳤고, 교실 안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아픔도 컸지만, 창피함과 자책감은 더욱 컸다. 담임선생님은 오늘 공부하지 말고 집에 가서 공납금 받아오라며 교문 밖으로 쫓아내 수업도 못 받게 했다.
집에 가 봐야 돈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대로 시내를 몇 시간이고 떠돌다가 하교 시간에 맞춰 아무렇지 않은 척 집으로 돌아왔다. 생계유지에 힘드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날 있었던 일은 끝내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 체벌은 졸업할 때까지 반복되었다. 매를 맞을 때마다 생각했다. "돈이 없는 것이 무슨 죄인가. 정말 담임선생님이 맞나"라는 생각에 회의와 반감이 들었다. 역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예순다섯 살이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월이 오면 두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 분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을 다독여 주셨고, 다른 한 분은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셨다. 이상하게도 고마웠던 역사 선생님보다, 냉정하고 무서웠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더 자주 떠올랐다. 왜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굴어야 했는지, 이제 와서라도 조용히 묻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역사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이 먼저 떠오른다. 그날의 따뜻한 말씀이 내가 사람다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나는 사람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김평수 선생님은 진정한 스승으로 제가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