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머무는 그 조용한 집

by 숙단

숙단(淑旦)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걸음을 떼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머릿속이 멈춘 듯했다. 창원공원묘원 ‘영생원’ 5호실, 아버지가 벌써 17년째 머무시는 그 자리 앞에서 나는 매번 그렇게 얼어붙는다. 금세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실제 아버지를 찾는 건 1년에 네댓 번이 고작이다. 명절과 가정의 달이 되어서야 마음이 겨우 움직이곤 한다.


아버지는 산골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어렵게 유학을 떠나 교사가 되셨다. 나중에 시작하신 사업이 연이어 실패하며 가세가 흔들려도 자식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덕분에 우리 남매는 제 몫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의 대부분도 아버지의 교육열과 고단함 위에 놓여 있다는 걸, 해가 갈수록 더 또렷이 느낀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힘들 때면, 늘 아버지가 떠오른다.


영생원의 복도는 길고 조용하다.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신발 밑창 소리만 작게 울린다. 벽면을 따라 작은 봉안함이 빽빽하게 놓여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칸 앞에 서면 숨이 멎는다. 아크릴판이 봉인돼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명함판 사진 한 장과 생존연도가 적힌 명패 하나가 그 자리를 말해준다. 단출하고 조용한 그 칸이 이제 아버지의 마지막 집이 되었다.


얼마 전, 복도에 붙은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붙은 ‘15년 사용기간 만료’ 문구와 텅 빈 봉안함 몇 곳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다행히 갱신해 앞으로 한동안 더 머무르실 수 있지만, 그 안내문과 빈칸들이 말없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다른 이들의 빈자리를 살피다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장손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오촌 당숙과 함께 시골에 멋진 가족묘지를 마련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산기슭, 잔디로 단장된 그 묘역은 말 그대로 평안한 자리였다.


여러 사정으로 봉안당에 일단 모셨다가 곧 옮기겠다는 약속은 아직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그곳에 선뜻 아버지를 모실 엄두가 나질 않아 또 망설인다. 정성껏 마련한 묘역을 비워 둔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차라리 직계 가족만이 공간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가정의 달인데, 할아버지 한 번 뵙고 와야지.” 아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끔 가요. 머리 복잡할 땐, 다녀오면 맑아져요.” 그 말에 순간 목이 메었고, 가슴 안쪽이 조용히 저려왔다. 손자가 아들보다 낫구나 싶었다. 아버지의 자리가 지금 손자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가족묘지로 옮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자주 찾아뵙는 게 더 절실한 효도일지 모른다. 아버지는 이런 사정을 다 이해하실 것이다. 생전에도 늘 “허허” 웃으며 너그럽게 넘기셨던 분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 묘지 문제도 꼭 정리해 드릴게요.”

작가의 이전글손때 묻은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