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늘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옛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것은 서류나 자료도 아닌 텀블러였다. 하루는 하도 궁금하여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라고 슬쩍 물어보았다. “몸에 좋은 채소즙이 들었다”라고 했다. 순간 놀랐다. 남자가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건강을 챙긴다는 사실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트렌드인가 싶어 괜스레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무렵은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한 지역 신문사가 주관하는 릴레이 캠페인 행사에도 기꺼이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행사는 플라스틱 용기 대신 텀블러를 많이 사용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다회용기 활용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지만, 실제 사용률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휴대의 불편함이었다. 필자는 늘 가방을 메고 다닌다. 그 속에 텀블러까지 넣으니 가방의 배가 볼록 나왔다. 정말 볼품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1회용 컵에 다시 손이 갔다. 그때 작은 실천도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 집 찬장에도 예쁜 텀블러가 여러 개 있다. 대부분은 딸이 쓰는 것이다. 크기와 색깔이 다른 텀블러를 골라 쓰는 딸과 달리 매번 들고 갈까 말까 망설인다.
올해 초부터 모 단체에서 주관하는 합창 모임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마시는 물의 양과 횟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회용 컵에 담을 물로는 부족해 다시 텀블러를 꺼내 들었지만, 여전히 휴대의 불편함을 느꼈다. 고민 끝에 가방의 공간과 무게를 고려해 절충안으로 선택한 것이 플라스틱 생수병이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찬바람 들면 이마저 무용지물이 되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지난겨울을 떠올려본다. 연례행사처럼 감기에 걸려 며칠 고생했다. 텀블러에 따뜻한 물이나 몸에 좋은 생강차와 대추차를 담아서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즐겨 마시던 커피 때문에 속이 쓰렸던 날이 여러 번 있었는데, 다른 음료를 대체했더라면 이런 문제들이 자연스레 해소되지 않았을까. 건강은 언제나 작은 선택에서 갈린다. 사소해 보이는 한 잔의 습관이 몸의 리듬을 바꾸고, 하루의 기운까지 좌우한다. 텀블러 하나 챙기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행스럽게도 텀블러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2032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10%에 가까울 전망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재사용 가능한 제품으로의 전환에 크게 힘입은 결과이다. 특히 MA 세대를 중심으로 성장을 뜨겁게 견인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반성이 텀블러 사용이라는 친환경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텀블러는 환경도 지키고, 건강도 챙기고, 소비 습관까지 바꿀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하나만 고집하지 말고 휴대용은 경량화하고, 사무실용은 따로 비치하는 식으로 나누면 불편함도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작은 작지만 분명한 실천이다. 그 시작이 건강이고, 결국 환경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추워지기 전에 찬장 속 텀블러를 하나 꺼내 들고, 그 동료처럼 늘 가까이 두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톡톡히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