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담배 냄새

by 숙단


숙단(淑旦)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즐겁고 반짝이는 기억보다는 어둡고 눅눅한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 집은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새어 나오는 공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아 일본으로 징용되셨고, 돌아오신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 할머니는 혼자 어린 아들을 키우며 생을 버텼다. 농촌에 살았지만 집도, 땅도 없이 빈농으로 가난은 우리 가족에게 거의 유전처럼 대물림되었다.


서울에 일자리가 생겨 아버지가 먼저 상경하셨고, 뒤이어 우리 가족도 산꼭대기의 달동네 판잣집으로 옮겨갔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딸린 허름한 시멘트 건물은 평지보다 100미터나 높아 장마철 물난리 걱정은 없었지만, 겨울에는 매서운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어야 했다. 아버지는 하청 받은 목수 일을 하셨지만, 늘 공정에 쫓겼고 번번이 손해를 보셨다. 결국 우리는 2년 만에 낯선 마산으로 내려왔고, 나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회성동, 석전동… 이름도 익숙해지기 전에 짐을 싸야 했던 이삿날들. 어떤 집은 방이 비좁아 몸을 곧게 뻗을 수 없어 비스듬히 누워야만 했다. 천장은 너덜너덜했고, 벽지는 눅눅했으며, 장판은 오래되었지만 주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친구 삼았다. 아버지의 주량은 25도짜리 독한 소주 다섯 병 정도였고, 담배는 매일 두 갑씩 태우셨다.


특히 비가 오거나 일이 없는 날이면 갈 곳 없는 아버지는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좁은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연기는 천천히 퍼지다 천장에 걸렸고, 중학생인 나와 어린 동생들은 그 냄새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며 자랐다. 흡연보다 간접흡연이 더 해롭다는 것을 알 리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이면, 우리는 사실상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운 셈이었다.


난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던 아이였다.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 냄새 속에서도, 연기 자욱한 방에서도 담배 냄새가 역겹다거나 몸에 이상 반응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졌다. 마치 구수한 커피 향처럼.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묘한 애정이 그 냄새에 덧입혀졌는지도 모른다. 그 연기 자욱한 환경은 분명 나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의 복합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심리적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 연기 속에서 아버지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도 가족을 책임지려 애썼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늘 담배 냄새를 맡고 살았음에도,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의식과 마음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청소년기의 나에게 담배는 타락의 상징이었고, 벗어나고 싶은 환경의 냄새였다. 불량 청소년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고, 힘든 삶 속에서도 늘 절제하며 가정을 지켜내신 어머니의 삶 앞에서 나쁜 길로 갈 수 없었다. 이러한 강한 의지는 단순히 환경의 영향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이틀에 한 갑씩 나오는 담배는 늘 남에게 나누어주었다. 덕분에 고참들과도 사이가 좋아졌고, 후임에게도 한 대씩 건네며 마음을 열었다. 담배 한 개비가 인간관계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작은 나눔은 곧 소통임을 깨닫게 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연결성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고, 마셔도 소주 반 병이 한계다. 동생들은 아예 술도, 담배도 입에 대본 적이 없다. 사람의 행동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대물림하듯 폭력적이 되거나,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그대로 며느리에게 행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유전적인 요인 또는 개인의 강한 의지가 환경을 넘어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버지는 17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일흔이 넘어서야 담배를 멀리하셨지만, 이미 몸속에는 수십 년간 쌓인 니코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병마의 고통을 지켜보며 담배의 해악을 다시금 절감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날들, 담배 연기 너머의 따뜻했던 시선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흐뭇한 눈빛에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묵묵한 지지를 읽었다. 결국, 담배 냄새 속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냄새 너머에 있던 아버지의 무뚝뚝한 정을 느끼며 자란 것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만큼은 시킨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는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애를 썼다.


이렇듯 어린 시절 겪었던 혹독한 환경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환경이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듯, 역설적인 경험 속에서 나만의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비로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두운 터널 같았던 유년의 시간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귀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혹독했던 환경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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