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단(淑旦)
요즘 결혼식에는 주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형식보다 진심을 중시해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편지를 읽어주거나 부모가 간단한 덕담을 건네는 것으로 대신하곤 한다. 결혼을 늦추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우리 딸과 아들은 아직 구체적 결혼 계획이 없다. 언젠가 딸이 결혼하게 되면, 사돈 쪽에서 덕담을 하겠지만, 아들이 할 때는 내가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끔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해야 할 말은 정해 놓은 것은 없지만, 그냥 임팩트 있는 짧은 딱 세 마디만 하고 싶다.
나는 사회에 조금 늦게 나가 스물아홉에 취직했고, 서른하나에 결혼했다. 결혼 후 첫 아이로 딸을 얻었고, 이어서 둘째로 아들을 얻었다. 그땐 둘을 낳는 것이 유행이라 딸과 아들이라는 성별의 조합은 흔히들 말하는 200점짜리 구성이었다. 어쩌면 내가 남들보다 잘 해낸 유일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나이 차이는 두 살. 위가 딸이어서인지 남매 사이가 참 좋았다.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겨주는 딸을 보며 흐뭇할 때가 많다.
지인들이 어떻게 남매를 낳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너무 간단하다고 농담처럼 말해주곤 했다. "첫째 낳을 때 아내에게 올라갔던 방향을 잘 기억했다가, 둘째 때는 반대로 올라가면 그렇게 된다"라고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저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오늘은 진지하게 마음을 담고 싶다. 자식이 결혼을 앞두었을 때, 부모가 건네는 한마디에는 살아온 인생의 농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이 너희에게 남기는 아빠의 작은 주례사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망만 커진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니 너무 믿지 말라”
“다른 사람이 행복을 대신해 줄 없으니 자신에게서 찾아라.”
결혼하게 되면 누구나 상대에게 기대를 품게 마련이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듯한 말과 행동에 설레겠지만, 현실은 늘 기대와 다를 때가 많다. 그러니 부디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라.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지기 마련이다. 기대감을 줄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으냐. 소셜미디어에서 극찬하는 맛집에 찾아갔다가 기대에 못 미쳐 실망감이 두 배로 커졌던 경험을 떠올려 보아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괜찮은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너희가 행복해지는 비결이 될 것이다.
깨소금도 잠시. 조금 지나면 서로의 허점이 눈에 보일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에 부딪히고, 실망하거나 상처받기도 한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원래 허물 많은 존재구나' 하고 서로를 다독여 줘라. 서로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크고 작은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더라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너희의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지 자문해 봐라. 그러면 용서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감싸안는 순간, 결혼이라는 긴 여행은 훨씬 즐거워질 것이다.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말아라. 행복은 절대로 상대방이 완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꼭 기억해라. 배우자가 너희의 모든 갈증을 채워주기는 불가능하다. 시련과 고통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가 있으니,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자신만의 멘털관리 능력도 익혀라. 각자의 삶의 중심을 단단히 지키면서 서로의 행복을 나누고 응원하는 동반자가 되어라. 행복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쌓아가는 것이다. 상대에게서 행복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이 더 오래가는 법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예전의 주례사는 왜 그렇게 비슷했을까. "시부모님 잘 모셔라",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라", "무조건 참고 견뎌라"… 그 시절엔 그런 말들이 삶의 생존전략이었고, 가족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하며, 개인의 감정과 욕구 또한 소중히 여겨야 하는 시대다. 그러니 너희도 예전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부부의 모습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아빠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동행하는 긴 여행인 것 같다. 어떤 부부는 나란히 가고, 어떤 부부는 한쪽이 먼저 가거나 따로 가기도 하며, 심지어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너희는 세월이 많이 지나도, 나이가 많이 들어도, 지금처럼 꼭 손잡고 함께 갔으면 한다. 분명 너희의 앞에는 따뜻한 햇빛도, 거센 폭풍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기대보다는 진심을 나누며, 허점까지도 사랑할 줄 안다면 그 길이 비록 사막일지라도 두 사람에게는 꽃길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이해와 존중, 웃음과 배려가 밑바탕이 될 때 두 사람의 삶은 단단한 울타리를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하는 아들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무쪼록 앞날에 햇살 가득한 날들이 좀 많았으면 한다. 가끔은 오늘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너희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길 바란다. 아빠는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며, 늘 곁에서 응원하고 있을게. 이 덕담은 딸에게도 하는 말이니 딸아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