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내 인생의 두 번째 변화는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게 두려워요
나는 변화가 싫다. 차곡차곡 쌓여가던 시간과 노력을 무너뜨리는 게 싫다. 미대에 가서 맞지 않는 전공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도, 변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나무를 다루고 가구와 조형 만드는 공부를 했는데, 반드시 위험한 기계를 써야만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계를 다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그걸 극복할 만큼 그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는지도 몰라. 여기에 내 손가락을 걸 만큼 나무를 사랑하는가?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거지 가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뭐였을까? 만약 계속 그림을 그렸다면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했을까? 스스로가 정말 한심했다.
그런데 해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도, 남들은 멀쩡히 해내는 것을 나만 할 수 없다는 게 더 뭣 같았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가지 않으면 딱히 갈 곳도 없어서, 매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괜히 여기저기에 돈을 쓰고 다녔다. 시간과 돈을 가져다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맞으면 차라리 빨리 그만두고 다른 거라도 찾았어야 했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던 몇 년을 단번에 포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2) 나는 스니프, 스커리, 헴과 허 중에 누구일까?
2학년 마지막 학기에 토론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었다. 생쥐 스니프, 스커리, 그리고 꼬마인간 헴과 허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찾아 돌아다닌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실패를 거듭하고 벽에 부딪혀가며 치즈를 찾는 반면 헴과 허는 경험을 살리는 능력에 의존한다. 결국 모두가 치즈창고 C를 찾게 되고, 매일 풍족하게 치즈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즈 창고 C의 치즈가 바닥나버린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그전부터 치즈의 재고를 체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새로운 치즈를 찾으러 나섰고 빠르게 치즈창고 N을 찾아낸다. 그러나 헴과 허는 '갑자기'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누군가가 자신들의 치즈를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허는 뒤늦게나마 치즈를 찾으러 나서지만, 헴은 따라가지 않는다. 허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새로운 치즈 창고 N을 찾아낸다.
“나는 새 치즈를 좋아하지 않아. 그건 내가 먹던 치즈가 아니야. 전에 먹던 치즈가 먹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치즈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
헴이 어리석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헴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변하기보다는 상황이 바뀌어주기를 바랐다. 나는 변화에 대비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고 있었다.
3) 새 치즈의 맛
내 치즈는 이미 먹을 수 없는 상태인데,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치즈를 찾으러 가지 않는다면 평생 제자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몇 년간 해오던 그림을 포기하는 일이 두려울지 몰라도, 막상 새로운 걸 시작하면 이전의 치즈 따위는 잊어버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힘이 났다.
그래서 바로 자퇴를 하고, 한국어 문학과에 오게 되었다. 새 치즈는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글쓰기에 큰 욕심이 없어서 마냥 즐거웠지만, 요즘은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가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머릿속에 담아두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부 풀어버리는 것에 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앞으로 새로운 치즈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 또 온다면, 이번에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은 자신 없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고 새로움이 반갑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전에 용기를 냈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믿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