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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두 Apr 26. 2023

05. 이 죽일 놈의 슬럼프;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늘 비슷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던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온 시기가 두 번 있다. 우선 오늘은 그 첫 번째, 입시 시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교과서 구석에만 그렸던 꿈을 커다란 도화지에

     

   학창 시절의 나는 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칭찬할 것도 딱히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정말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성적은 당연히 잘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중학생 때부터 쭉 지켜 온 공부 습관이 있거나,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경우였는데 난 어느 쪽도 아니었다. 유일한 취미는 교과서에 낙서하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당연히 없었다.     


   그렇다고 어딜 놀러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아니라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무척이나 낮았다. 당시에는 살이 많이 찐 상태였기 때문에 예쁜 옷을 입는 즐거움도 몰랐다.      


   어느 날, 어떤 친구가 같이 미술학원에 다녀보자고 제안했다. “너 그림 좋아하잖아.”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아서 울렸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며칠 뒤, 바로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은 입시 준비를 시작하기에 조금 늦은 때 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결코 늦은 시기가 아니었다. 그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교과서에 혼자서 몰래 그렸던 꿈을 커다란 도화지에 그리니 하루하루가 벅차고 설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까, 매달려서라도 계속 붙어있고 싶었다. 오기도 생겼다.  


             

* 가장 좋아하는 꽃은 해바라기다. 생각해 보면 해바라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고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 반 고흐를 만나다     


   하지만 그림 쪽에서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주변에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이 차고 넘쳤다.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는 날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 힘이 되어준 책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그림이 안 팔려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꼭 나 같아서 내적 친밀감이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림이 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이 글을 보면 힘이 났다. 확실히, 너무 쉽게 얻은 것들에는 끌리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고 결국 그것을 얻게 되었을 때 만의 기쁨이 있다. 노력한다는 것, 얼마나 멋진가! 

* 감자 먹는 사람들, 꽃병에 꽂힌 열 두 송이 해바라기

   고흐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그림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림에 화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고흐 그림을 보면 ‘아, 이 사람 성격이 정말 나빴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고흐의 그림에 더욱 끌렸던 것 같다.                



3) 이 죽일 놈의 슬럼프;     


   예전에 누군가가 슬럼프를 계단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노력하다 보면 잘되는 시기가 분명히 온다고 한다. 실력이 오르는 것이든, 성공하는 것이든. 그런데 한번 껑충 뛰어오르고 나면 정체기를 겪는데, 그 시기가 슬럼프라고 했다. 간혹 정체기가 말도 안 되게 긴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실력은 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한단다.      


  아니, 잠깐. 그럼 반 고흐는 죽고 나서 유명한 화가가 되었으니까, 뛰어오르는 시기가 죽고 나서야 있었던 거 아냐? 인생이 계속 슬럼프였던 거 아니냐고.    

  

  진짜 굉장히 힘 나네. 아주 그냥 의욕이 생겨. 하지만 그래도 그려야지 뭐, 그림을 좋아하니까. 원래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랬어. 아휴, 이 죽일 놈의 슬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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