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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쓰비 보름달 Nov 22. 2022

노가다 갤러리아

10월 31일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온갖 소문이 항간에 떠돌지만 나는 당일 노가다를 나가 피곤에 절어 늦은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같이 출근한 반장님의 일하다 죽은 산재 피해자들이야 불쌍하지만 뭐 놀다죽은 그들이 불쌍하냐고 하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늘 말을 트게 된 한 반장님에 대한 이야기다. 제빵을 하다가 음악을 병행하며 노가다를 하신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평택처럼 실내 노가다는 결근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분은 야외 노가다 기준 매달 주6일 풀출근이라는 점. 이번 달은 단 두번을 제외하고 매일 야외 노가다를 뛰었다고 한다. 심지어 인천에서 오기 때문에 4시 반 첫차를 타고 강남까지 온다.


사실 나는 스스로 체력이나 끈기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야외 노가다는 나의 자만을 짓밟았다. 선선한 10월의 태양볕에도 나는 한없이 약했고 4시에 일을 마치는 걸 알면서도 3시에는 녹초가 되어서 신호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넘지 못할 벽이면 손톱자국이라도 남기자는 다짐을 비웃듯 고덕의 수장업무와 야외 현장에서의 시멘트 깨기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주6일 풀출근하는 반장님을 보며 자신하는 부분에서도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오히려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려 3시간을 왕복해 출퇴근하고 노가다가 끝난 후에도 음악작업을 하는 그분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겨우 언론사 논제를 써보는 일이지만 글 쓰는 일은 역겨운 일이다.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들의 이상적인 포맷에 맞추어 내 초고를 마주하고 퇴고하는 작업이 두렵고 진빠져 미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침없이 현장을 누비는 반장님의 부동심에 스스로 무척 부끄러웠다. 나의 글쓰기 두려움은 그분 앞에서는 단지 ‘게으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난 저널리즘 수업에서 선생님은 "아마 여기에 발을 들이신 대부분이 주변에서 이 길을 말리셨거에요"라고 하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나는 이 길을 추천받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무슨 2년차 때 되니 마니하는 소리를 듣고있자니 주눅이 들었다. 저널리즘의 길이 이렇게 험난한 가시밭길인지 몰랐기에 무척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기회가 이마에 왔을 때 잡았고 이 판에 발을 담궜다. 후지사와 슈코 9단은 기성전에서 1승 3패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 자살하기 좋은 나뭇가지를 자르고 타이틀을 따냈다. 처절한 개포동 먼지 속에 뒹굴지만 목표를 향해 게으름을 극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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