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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쓰비 보름달 Dec 01. 2022

노가다 갤러리아

그가 공동현관을 여는 법


김포의 택배왕국

“여기가 쓱이에요”

파렴치하게도 남의 차에서 침 흘리며 자고 말았다.

최근 한국시리즈 우승 구단 CEO의 파격적인 할인으로 김포물류센터는 넘치는 주문을 소화했다.

러닝 크루를 하는 지인이 힘듦을 토로해 노란 뚜껑의 1톤 탑차를 타고 김포 물류센터에 갔다.

온갖 아웃렛에 물류창고로 가득한 이곳은 새벽임에도 이미 많은 차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단말기를 찍으며 오늘은 별로 물량이 없다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까대기 전, 더크앞에 대기.

(숙련직의 까대기)

사전에 물류창고 안은 무척 춥다는 언질을 받았는데 안이나 밖이나 귀가 떨어지게 추운 날이었다.

때문에 추운 온도에 대한 적응을 건너뛰고 물품을 탑차에 싣는 ‘까대기’에 바로 착수할 수 있었다.

물류창고 직원들이 분류해놓은 물품에 주문 스티커를 붙이고, 포장지를 묶어 트렁크에 실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지만 둘이서 합을 맞추니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하다 보면 단순하기에 일머리가 빨리빨리 는다.

우리는 물류센터에 도착한 지 20분 만에 김포를 떠나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교수님

(아프리카 청춘이다)

“아, 우리 오전에는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오전에 배정받은 구역은 서울대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멀고 탑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많은 대학교는 택배기사에게 기피 구역 1위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 어플과도 연동이 잘 되어있지 않아 유난히 길을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생활과학대학 건물에 배송을 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의 층별 안내문구를 보니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저술하신 김난도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었다.

또 이런건 지나칠 수 없으니 사진을 찍었다.

한 달 전에 이곳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친구와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친구가 서식하는 건물 카페에 유제품을 배송하고 있으니 싱숭생숭했다.

기나긴 서울대에서의 여정이 끝나고 나니 오전 11시였다.





(어떻게 열었어요?)

밥을 먹겠다는 강한 의지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 분, 지켜보니 모든 공동현관을 자기 집 문 따듯이 열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여쭤보니 전에 배송하면서 만난 쿠팡맨 아저씨가 공동현관 번호 키 주변에 먼저 다녀간 배송기사들이 비밀번호를 매직으로 써 놓는걸 알려줬다고 한다.

 정말 작게 또는 다잉 메시지처럼 써 놓기 때문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미 다 알아보고 열고 들어간다고 한다.

복잡한 오피스텔 단지는 거즘 이 다잉 메시지가 있었다.

보안상 위험하다는 생각과 함께 후임? 기사들을 챙기는 택배기사들의 말없는 배려가 느껴졌다.


아늑하디 아늑한 기사대기실

(그래도 되는 사람)

고대하던 점심밥을 먹었다.

하지만 늘상 그렇듯 밥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먹기 때문에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전형적인 한식 뷔페였는데 갈비찜이 신선하고 맛있었다.

오후 물량 공급을 기다리며 생각보다 아늑한 기사 대기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 잠깐의 꿈속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왔는데 기분이 찜찜했다.

오후는 대림동을 배정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무실에 배달하라는 코멘트에 따라 과자세트를 배송한 후 3학년 4반으로 다시 올려달라는 선생님의 갑질을 당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택배 기사는 '그래도 되는 사람'일까?

수화기 너머의 그 분이 무척 얄궃게 다가왔다.

어찌어찌 되었든 논란의 초등학교를 끝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신나게 2차물류 싣고 집가는 길

(후기)

개인적으로 노가다나 기타 등등의 알바보다는 쉽고 페이도 좋았다.

땀도 별로 나지 않고 운전하는 일이 피로하긴 하지만 다들 7시에서 5시까지는 일하지 않는가?

하지만 일하며 겪는 외로움과 모멸감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고 한다.

비에 젖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유명 정치인이 살던 그 아파트 입주민의 왜 화물칸에 안 타고 입주민용 엘리베이터에 탔냐는 말 한마디에 자존감이 그 엘리베이터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는 그의 말에 숙연해졌다.

특히나 외향적이어서 다른 기사들에게 자주 말도 걸던 그이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그 입주민을 처절하게 욕해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장면)

유난히 오늘 일하던 와중의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자 배송을 위해 단지에서 찢어지기 전 아쿠르트 기계위의 사모님과 마주쳤다.

“저 야쿠르트 기계도 사거나 렌트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저 분들은 다 근로자 아니었어요?”

“다 사장님이래요. 가격도 다르게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저 기계는 그럼 일 관두시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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