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정직했다. 겨우내 저장한 김치만 먹다 싱싱한 풀맛이 그립다면 그것은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큼한 냉이와 달래 무침이 밥상을 싱싱하게 하고 갖가지 나물들이 입맛을 되살렸다. 여름에는 시원한 오이냉채와 수박 화채로, 가을에는 햇밤과 각종 콩을 넣은 영양밥과 자글자글 끓인 된장국으로 낙엽 보고 허해진 속을 채웠다. 김장으로 긴 겨울을 준비하고, 뜨거운 국 한 그릇으로 추운 겨울을 견뎠다. 입맛은 생존을 위한 몸의 언어였다.
입맛은 기억의 언어이기도 했다. 골목에서 지치도록 놀다가 집 안에 들어설 때 나던 술빵 냄새,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무쇠솥, 솥뚜껑이 미끄러지듯 열리면 하얀 김이 서서히 걷히고 완두콩이 듬성듬성 박힌, 둥글게 부픈 술빵이 나타났다. 새콤달콤하게 버무린 달래 무침에는 봄볕같은 엄마의 설렘이 담겨있었다. 안방 아랫목에서 콤콤하게 띄운 청국장과 웃목의 콩나물에는 할머니의 정성이 스며 있었다. 모두 몸에 새겨진 기억이었다.
기억은 여전히 정답고 따뜻한데 술빵도, 청국장도, 콩나물도 예전 온도가 아니다. 입맛이 변했을까. 어쩌면 그 음식들에서 내 시간의 결이 달라졌다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입맛에는 그 때 그 시절의 서사가 한 덩어리로 몸에 깊게 새겨져 있는데 지금 눈 앞에 놓인 청국장에는 그것이 없다.
나는 청국장을 먹다가 그때, 그 정직한 입맛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