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칼한 것이 생각나는 날이면, 나는 잔치국수를 삶는다. 잔치국수를 삶는 날은 어쩐지 집안이 환해지고, 매콤한 맛이 미리 떠올라 입안에 군침이 돈다. 어린 시절 국수를 지겹도록 먹어 물릴 법도 한데, 잔치국수만큼은 예외다. 이상한 일이다.
잔치국수를 떠올리면 마당에 친 휘장 아래 맴돌던 웃음 소리가 귀에 들려 오는 듯하다. 국수 그릇을 들고 서 있던 이, 귀퉁이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보며 웃던 이, 면을 삼킬 때마다 국수 가닥처럼 흥겨움도 길게 따라 붙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추억이 있는 잔치국수다. 그래서일까 잔치국수는 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잔치국수의 맛은 무엇보다 국물에 있다. 비린 내를 뺀 큰 멸치를 듬뿍 넣고 미리 끓여 둔다. 숙성된 김치는 채썰고, 호박도 가늘게 볶아 놓는다.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지단을 부쳐 돌돌말아 채 썬다. 김가루도 준비한다.
양념장 맛도 중요하다. 청양고춧가루와 조선간장과 까나리액젓을 같은 비율로 섞고 깨소금,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더한다.
이제 국수를 삶는다. 미리 삶으면 국수가 불어 맛이 없다. 면발이 가는 국수를 준비하고 물이 한 번 끓어 오르면 국수를 넣고, 다시 끓어 넘칠 듯하면 찬물 한 컵을 더 붓는다. 한 소끔 더 끓인 뒤 국수를 꺼내, 미끈거림이 사라질 때까지 흐르는 찬물에서 조물조물 휑군다.
큼직한 대접에 국수를 둥글게 말아 담고, 그 위에 고명을 얹은 후 구수한 멸치 국물을 조심조심 붓는다. 마지막으로 국수 위에 양념장을 발그레하게 얹으면 비로소 잔치국수가 완성된다. 연지곤지를 찍듯 국수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 있는 고명과 함께 국수를 후루룩 입에 넣으면 새콤한 김치 맛과 고소한 김가루, 부드러운 계란맛과 구수한 국물이 어우러지며, 맵싸한 양념장 맛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그릇이 비어도 컬컬한 여운처럼 잔칫날의 기억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