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도착한 첫 시작
작년 생강청은 유난히 맑고 깊었다. 밭에서 막 캐온 생강은 노랗고 맑은 황토빛이 났다. 살이 통통 오른 몸집에 한 입 베어 물면 생강향이 아사삭 퍼질 것 같았다.
퇴직 후 남편은 생강 농사를 짓는다. 생강은 한 밭에서 여러 해 심으면 수확이 좋지 않다. 해마다 자리를 바꾸는 윤작을 해야 한다. 아마도 작년 생강이 좋았던 이유는 흙 덕분일 것이다. 산비탈에 있는 그 밭은 무엇을 심어도 달고 맛있는 결실을 내놓았다. 같은 씨앗이었지만 흙이 달라지자 향과 빛깔이 달라졌다.
4월 보리 이삭이 올라 오고 감자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흙도 찬 기운을 내어 놓는다. 그때 생강을 심는다. 먼저 흙을 고르고, 거름을 뿌린다. 미리 싹을 틔워 둔 생강을 심은 후, 혹여 찬 기운이 스며들까 볏짚으로 덮어 준다.
뭉친 흙을 풀어주고, 거름으로 기름지게 하고, 묵은 뿌리를 뽑아 내 새싹이 숨을 쉴 자리를 마련했다. 흙 안에서 오래 기다린 생강은 6월도 중순이 지나서야 올라온다. 그 고요 속에서 뿌리는 자리를 잡는다.
마음밭을 기름지게 하는 일도 이와 같을 것이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묵은 생각을 비우고 하루를 성실히 돌보며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면, 비로소 작은 설렘 하나가 올라올 것이다. 생강이 그러하듯. 어쩌면 그것은 가장 늦게 도착한 첫 시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