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싶어 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하는 수필은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징이나 비유로 자신의 생활을 감출 수 있는 시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잘 아는 시인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지만 얼마 못 가 시쓰기를 그만 두었다. 달리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정직한 글을 피하다 보니 쓸거리에 제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글은 진실해야 한다. 기억을 통과한 문장일 때 글은 깊어진다. 상처, 부끄러움, 후회 등의 경험이 내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동시에 세상에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내놓은 행위이기도 하다. 만약 그 안에 진실이 없다면 그 글은 남을 설득하기 전에 나 자신도 설득하지 못한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글은 오래 버틸 수 없다. 공감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화요일마다 고사리(고전을 사랑하는 사람들)라는 독서 모임에 간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만나, 어느덧 군대도 다녀오고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밑바닥 속내까지 다 드러냈다. 시누이와 갈등, 시험에서 떨어진 일,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속앓이까지 숨기지 않았다. 감추지 않아도, 민낯이어도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다. 한 주에 한 번 만나도 할말이 늘 다음 주로 이어진다.
진실한 글쓰기도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 나와 불화하며 그러한 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 내 못난 속을 꿰뚫어 보는 일은 민망하고 불쾌한 일이다. 그 민망함과 불편함을 쓰는 일, 그것이 진실한 글쓰기다. 오래도록 치우지 못한 옷가지를 정리하듯, 버리지 못하고 두었던 짐을 들어내듯, 속에 묻어 둔 성가신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한결 가벼워질 때까지 나는 매일 비워낼 것이다.
글을 혼자 쓰지만, 혼자 존재하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계를 만든다. 진실성은 그들을 속이지 않겠다는 태도이자 나를 조금 드러내 보이겠다는 용기다,. 이 용기가 결국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