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숨겨 둔 저녁

by 벼리

3월 20일 책점으로 글쓰기

“또 마흐무트 우스타는 이스탐불 사람들이 몇 세기 동안 우물 안에 던진 것들이나 감추어 놓은 것들을 나열하는 것도 아주 좋아했다. 그는 오래된 우물 안에서 검, 수저, 병, 사이다투껑, 램프, 소총, 권총...... 중략......전혀 생각지 못햇던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은화도 발견햇다. 그중 일부는 물이 마른 깜깜한 우물에 감추기 위해 던져 놓았다가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진 것들이었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좋아하는 귀중한 것을 우물 안에 던져 놓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오르한 파묵, 『빨강머리 여인』p. 96)

또 4월이 온다. 4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나는 그날을 잊기로 했다.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이었다. 도서관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딸아이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 깜깜한 우물에 숨겨 두기로 했다. 그러나 누군가 두레박을 내려 물을 퍼올리거나, 무심히 조약돌 하나를 우물 속으로 떨어뜨리면 숨겨 놓은 그날의 저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때마다 그 기억을 덮으려 애썼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꺼내지 않기로 했다.

세월이 흘렀다. 바늘로 찌르던 가슴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누구도 그 아이를 말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 숨겨둔 채 잊은 척 살아왔다. 4월이 되면 우리는 함께 웃다가도 문득 멈추곤 했지만, 왜 멈추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남해의 바람결이 따뜻하다. 왕벚꽃은 봉오리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다시 4월을 준비하고 있다. 남해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 어딘 가에 있을 아이는, 지끔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사이 엄마는 예순을 훌쩍 넘어 할머니가 되었다.


다시 인연이 되어

바람으로 스치듯 만나더라도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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