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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Jul 18. 2022

그 동네의 봄날 풍경


    열정으로도 삶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 나는 행복했던 기억을 찾아 길을 나선다.  

    

   그날도 그랬다. 신혼 시절을 보냈던 대천(지금은 보령시)을 가기로 했다. 가는 동안 그 시절을 회상했다. 붉은 꽃무늬가 있는 캉캉 원피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단발머리 나폴거리는 어린 새댁이 보인다. 석유곤로 위에서 작은 냄비에 담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저녁밥은 연탄불 위에서 뜸을 들여가고 있다. 저녁밥을 먹고 새댁은 신랑과 대천 읍내로 영화를 보러 갈 참이다. 봄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황홀한 서해 저녁놀도 구경할 것이다. 달콤한 시절이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어 대천 읍내를 나가야 했다. 신혼집에서 대천 읍내까지는 약 20여 분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가 드믄드믄 다니는 시골이라 한번 놓치면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시간 맞춰 정거장으로 나갔다. 버스는 대천 읍내에서 출발하여 주교리를 지나 대천화력발전소로 간다. 나는 대천 읍내로 나갈 거니까 반대편에서 타야 한다. 대천화력발전소에서 출발한 버스는 모퉁이를 돌아 가까이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정거장을 서너 개 지났을 때였다. 정거장에서 두 명의 승객이 탔고 버스는 다음 정거장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한 할머니가 장거리를 머리에 이고 저만치서 손을 흔들었다. 가물거릴 만큼의 거리였다. 눈 밝은 젊은이가 버스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푸른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내 또래 젊은이는 허둥대며 오고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버스를 타기에는 가당치 않을 거리였다. 그 할머니가 버스를 타려면 기사도 승객도 모두 5분 이상의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이마 덮을 만큼의 장거리를 머리에 이었으니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다.      


   버스 기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버스는 배차 시간에 맞춰 다닌다. 그 질서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버스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요동치며 내달리는 버스와 기사의 신경질적인 횡포를 우리는 묵인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기사는 기다렸다. 푸른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봄바람에 날리듯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젊은이는 할머니의 장거리를 어깨에 메고, 나머지 승객들은 할머니께 어서 오시라고 소리와 손짓으로 힘을 합했다. 운동회에서 우리 편에게 보내는 함성처럼 들렸다. 할머니와 젊은이가 버스에 올랐다. 젊은이는 어깨에서 장거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기사는 대답 대신 젊은이를 보며 함빡 미소를 지었다. 알록달록 꽃무늬 티와 자주색 몸빼를 입은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홍조를 띤 얼굴로 말했다.     


“히이유, 기사 양반, 고마워유우.”   

  

우리에게도 말했다.     


“아이고, 미안혀유우”     


할머니는 앞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준 자리를 몇 번 거절하다 귀퉁이에 살그머니 앉으며 말했다.   

   

  “ 고마워~유우”     


   기사가 시동을 걸자 길가 흐드러진 벚꽃잎이 날아들었다. 버스가 대천 읍내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충만한 무언가로 가슴이 차올라 옆 사람과 손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착했다. 사람들은 모두 따뜻해진 마음을 품고 기사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기사니임, 수고하세요.”    

 

기사가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곳에서 1년 정도 살다 서울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고 시간의 흐름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야 하는 곳으로.


   문득문득 그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그 젊은이가 보고 싶었다. 지금도 젊은이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장거리를 어깨에 메고 달리고 있을 것이다.


  30여 년 이상 세월이 흘렀고 빠르게 바뀌는 세상이었다. 그 버스 기사와 승객들과 달리, 시간은 기다려 주는 법 없이 매몰차게 제 갈 길을 갔다. 산이 어제의 산이 아니듯 시간도 공간도 변했다.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할머니의 장거리를 어깨에 얹고 달리던 젊은이의 따뜻한 마음과 기사와 승객들처럼 늦어도 함께 가겠다는 마음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순간을 기억하며 보령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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