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중학생 무렵, 글을 쓰면서 처음 꾸었던 꿈이었다. 나에게 ‘작가’라는 직업, 그 이름은 재능도 실력도,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던 나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고, 그것을 읽는 독자도 나도 치유를 받으며 또 다른 미래를 그려나가고 용기를 얻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기에, 그 무렵부터 여기저기 공모전에 도전했고 브런치 또한 열심히 두드렸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잘하는 것이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교내 대회로 처음 접한 주제는 남북통일에 관한 글이었다. 중학교 3년 동안 매년 공모전에 글을 썼고, 늘 동상에서 멈추던 내가 은상, 금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의 열정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였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의 축소판이자 작은 놀이터였기에, 많지 않은 학생 수 속에서 잠시 으쓱해졌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냉정했다. 교내가 아닌 더 큰 무대에서 도전했던 공모전들은 번번이 떨어졌다. 그 안에는 브런치도 있었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그래서 원망하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게 맞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브런치 작가 도전에 통과했다면, 오히려 교만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 글을 썼다. 작가가 되었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어렸고, 시야는 좁았으며,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탈락 소식을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괜한 오기가 생겨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기 시작했다. 소설, 시, 에세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딱히 잘 쓰는 방법은 몰랐지만,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였다. “글을 쓰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다.” 지금 생각하면 막연하기도 하고 조금은 바보 같기도 했지만, 그 믿음 하나로 책장을 넘겼다.
그 많은 책들을 읽는 동안에는 글쓰기를 잠시 접었었다. 쓰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던 것이 정답이었다. 그래서 글보다는 책이 나에게 먼저였다. 덕분에 늘 70점을 오가던 국어 점수는 80점, 90점을 찍기 시작했고, 나는 ‘역시 책이 정답이구나’ 싶었다.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고 즐거움도 있었다.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사랑해 줄까를 고민했지만, 지금도 그 답은 알지 못한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쓰다 보니 부정적인 글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결국 욕심이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
그래서 일부러 좋은 글, 따뜻한 글, 위로가 되는 글을 쓰려했다. 그러자 읽어주는 사람들도, 찾아와 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기쁨은 컸지만 부담감도 함께였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수가 늘어날수록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었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과연 내가 이걸 잘하고 있는 걸까, 정말 자격이 있는 걸까.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은 널렸고, 생각이 깊은 사람도 많았다. 이 자리에 있어도 될지 스스로를 힘들게 의심했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써본 적은 없지만, 사실은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꿈은 이미 이루어진 셈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브런치 안에 글을 올렸을 때의 두근거림을.
글을 쓰면서 스스로 압박감도 많이 받았고, 글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수없이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더 긍정적이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수백 번을 자문했지만 아직도 뚜렷한 답은 찾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도 잘 모르는데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그러나 딱 하나 알 것 같은 것은 내 글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루라도 더 버티고, 뛰고,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한 그 사람들의 내일이 기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브런치에서 꿈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