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여러 번 간 곳이라, 나름 안다고 생각했었다. 어제도 밀양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 어쩌면 의도한.
헤매고 다니다 들어선 골목에선 언제나 무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꼼꼼한 딸은 무서움 잘 타고 덜렁대는 엄마에게 늘 계획이 부족하다지만, 인생이 어긋나봐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러 나는 기꺼이 길을 잃는다.
부산역에서 무궁화 호를 타면 구포와 물금, 원동을
지나 삼랑진을 거쳐 밀양역이다. 어젠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급하게 설거지를 하고 부산역에 갔다. 기차는 5분 후에 철로를 내달렸고, 삼랑진 역을 지날 때쯤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 가? 목소리가 다른데!"
"밀양에 놀러 간다."
딸은 목적지 없이 더운 날에 돌아다니는 엄마를 걱정했지만, 빨리 전화에서 놓여나고 싶다.
더운 건 더운 거고, 하루치의 싸돌아다님은 마쳐야 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곧 내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와 전화를 끊고 역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니,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사람보다 끌차가 눈에 많이 띈다. 기차를 급하게 내리던 노부부도 장에 가는 길인지, 들고 온 보퉁이 부피가 크다.
내가 내릴 곳은 밀양 향교인데, 덩치가 큰 끌차를 밀고 들어오는 할머니를 보다 기와지붕에 백일홍이
어우러진 모습에 버스를 내렸다. 왠지 아닌 듯해서 현판을 보니 밀양 관아란다. 관아건, 향교건 보고 싶은 것은 축 늘어진 백일홍이라, 어리숙한 자신을 달랬다.
가까이 영남루가 있어 관아의 백일홍을 뒤로하고
걸었다. 그 길은 처음 아닌가. 작년에 친구와 왔던
영남루는 버스에서 내려 돌계단을 올랐었는데, 그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짙은 숲이 영남루라고
알려주지만, 사람은 없고, 간간이 지나는 차들만
요란하다.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자, 왼쪽에 조그만
안내판이 '영남루는 여기다.' 한다.
그 돌계단이었다. 헤매다 찾아왔다고 매미들이
반가이 목청을 높인다. 친구랑 왔을 때는 근처
초등학생들이 놀러 왔었는데, 어딘가에서 여행 온
사람들로 왁자하다. 아랑은 깊이 잠들지 못하리.
메모장에 기와 돌담장을 그렸다. 불어오는 바람도
얼굴의 땀은 어쩔 수 없어 밀양역까지 걷기로 했다.
네이버 길 찾기는 늘 80%다. '바로 안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나는 스타벅스를 놓쳤다. 터덜터덜.
마음과 발이 엇박자를 낸다. 그때 눈에 들어온
롯데리아에서 빙수를 먹었다. 차고 달달한 맛.
영남루에서 그리다 만 돌담을 그리며 더위를 식히다 코레일 앱에서 오후의 기차표를 바꾸고
역으로 향했다.
날씨를 알리는 문잔가 했는데, 기차선로 문제로
기차가 연착한다는 문자다. 30여분 걸으면 밀양역이라는데, 다들 이 더위에 무리라고 했다.
더위보다는 역으로 가는 길이 직선이 아니라
문제다. 어디로 빠졌다 돌아올지 알 수 없는데,
나무 그늘이 시원한 길을 걷다가 강아지 산책하러 온 사람을 안 만났으면 기차를 놓치리.
땀이 흐른다고 우뚝 멈출 순 없다. 몇 발만 몇 발만 하면서 영화 밀양에서 본 카페를 보고는 다 왔다고 안심했다. 근처 우체국에 들러 지폐도 바꾸고 찬 물을 마시다 든 생각은 '가끔은 길을 잃어도 좋아'
였다.
에어컨이 나오는 역 대합실에서 우체국에서 바꿔온 지폐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부산으로 나를 데려다줄 기차는 여전히 늦는다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 집에서 계획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집에 갈 것이기에.
이런 연유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