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화려하고 화기애애한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오랫동안 수업을 못 할 거 같은 예감 말이다.
은옥이 소속된 단체에서 강의를 나가는 곳은 거의 다 노인과 관련이 있었다. 주된 수업이 웰다잉에 관한 것들이라 나름대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준비한다면서도 세상의 3대 거짓말이라는 '노인이 되면 빨리 죽고 싶어 한다.'는 말은 겉치레였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사람들의 욕심이 하늘을 찔렀고, 어딘가에서 노인을 위한 무언가가 있으면 불이든 물이든 서슴없이 달려갈 기세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리분별력이 나쁘지도 않았다.
은옥은 그런 게 불편했지만, 은옥 자신도 그런 시간을 맞는다면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지 장담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인 걸 어쩌겠는가. 은옥은 가끔 시신 기증 서약을 했다는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우월감에 빠져 마음대로 행동하는 걸 보면 참 서글펐다. 언제, 어디서, 어떤 죽음을
맞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그것보다 은옥은 스쳐 지나더라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조각들을 되새김하는 게 좋았다.
그날의 그 수업. 아무 거리낌 없이 활짝 웃었던 그
패션쇼말이다.
G시의 여성회관은 예상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은옥은 모처럼의 강의라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버스를 세 번을 타도 상관없었고, 아침 일찍 나와
오후 다섯 시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것도 눈
감을 수 있었다. 다행히 버스는 세 번까지 환승이
되어서 차비는 조금 덜 덜지만, 그게 하세월이라
아침 열 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와도 거의 저녁 일곱 시에 들어가니 몸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한 주에 한 번이요, 일곱 번이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강사 시장이 포화라고 했다. 강사가 넘쳐나는 시점이라 이것저것 따지다간 다음 차례가 올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거리가 멀다고, 지대가 높다고, 하루해가 다 간다고 '노'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물론 상담이라는 전문 분야가 있지만, 요즘은 발에 걸리는 게 상담전공 자라, 그 강의를 딴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이런저런 경력에다 여러 분야를 강의한
경험이 있고 수강생들의 나이대가 고루 섞여 있어서 여성회관 쪽에서 반겼다는 후문이 들렸다.
계약서를 쓸 때는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 불편했지만, 막상 강의를 다녀보니 거리가 먼 것과 강의 기간이 더울 때라 땀을 비 오듯 흘릴 각오 외에는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다섯 번의 강의를 하러 가는 중에 비가 왔다가, 더웠다가 우르르 쾅쾅 하늘이 온갖 난리를 쳐대니 어떤 옷을 입고 갈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세상에 거저 얻는 게 있을까. 오후 두 시에 시작하는 강의 시간에 맞추어 오는 수강생은 별로
없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경력 단절여성이라 학교에 갔던 아이들을 챙기고 밥을 먹고 커피타임을 즐기면 이십 여 분 늦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학교도 아닌 데 굳이 출결사항을
따지는 강사를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결사항에 따라 수료증이 달랐고, 그 결과로 여성회관의 목적이 더 이어질지 아닐지가 걸려있었다. 그럼에도 수강생들은 몇 달씩 이어지는 강의에 힘들어했고, G시 전역에서 강의실에 오기까지는 은옥만큼 만만치 않았다.
은옥도 수강생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절된 경력을 이으려고 여성회관에 등록은 했지만, 마음에 드는 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한 탓에 오후 수업에 심드렁했다. 피교육자의 위치는 아무리 수업이 재미있어도 수업시간 내내 몸이 뒤틀리고 집에 두고 온 아이들과 살림살이와 잡다한 것들로 마음이 들락날락할 거니까.
은옥도 사실 힘들었다. 여성회관 강의 전에는
초, 중, 고 학생들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십 년가량 강의를 해왔지만,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조카와 동생뻘의 수강생들은 처음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강의를 계속하려고 하는 것은 은옥 자신이 경력 단절인 데다, 이 강의 또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한 도전이었다. 은옥도 오십 중반에 심리학 석사를 따기까지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시간이었지만, 건강도, 돈도, 아이들의 눈총도 감당하긴 벅찼다. 설상가상이라더니 밥을 먹다가 입안이 이상해서 손바닥에 뱉은 건 멀쩡하던 이빨 세 개였다.
일곱 번의 수업을 배정받고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유월이잖은 가. 오후 두 시에 시작해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오후 다섯 시에는, 더 놀다 가려고 떼쓰는 아이처럼 끈덕진 해가 질척거렸다. 은옥은 시간표를 짜면서 여섯 번째 수업은 조금 색다르게 하고 싶었다. 어떤 수업을
해야 누구나 재미있는 시간이 될지 생각이 많았다.
늘 이 궁리 저 궁리로 가득한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이 미술놀이였다. 아이처럼 즐겁고 몰입할 시간이면 더 재밌지 않을까. 수강생들의 나이가 들쭉날쭉해도 자신만의 소중한 어린 시간은 있는
법이니까. 은옥은 옛날 물건백화점에서 준비물을 사고 수강생들이 어떻게 할 거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었다. 꼼꼼히 따지자면 강의료도 적고 하루해를 다 보낼 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서 엄청난 적자지만, 여섯 번째 강의 준비물은 자비로 하고 싶었다.
은옥은 어릴 때 그림을 그리고 놀 때가 제일 좋았다. 종이인형을 잘라서 옷을 그려 입히고, 친구들의 인형 옷을 그려준다고 줄을 세운 데다, 잘 그린다고 아이들에게 칭찬도 듣고 과자도 받아먹던 그 시절 말이다. 수강생들도 저만치 밀쳐놓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끈적거리는 여름날 오후 강의시간이 즐거우리라. 아픈 무릎도 잊은 채, 계단 천지인 5층의 옛날 물건백화점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인쇄가 선명하고 그리기 좋아 보이는 종이인형 26 장을 샀다. 집에 오자마자 인형 한 장을 꺼내어 식탁에서 인형을 자르고 옷을 그렸다. 옷을 자르다 슬그머니 열 살이 된 은옥은 한 살이 많던 뒷집 송미에게 가위질을 예쁘게 하라고 눈을 흘기고 있었다.
강의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비가 아니라도 노곤해지는 7월의 오후에 수강생들을 기다리는 건 뭔지 모를 강의 시간이었다. 지난주에 강의를 마치면서 다음 주 준비물로 가위를 가져오라는 말에 가위는 꺼내놓았지만, 다들 다른 날보다 편한 차림일 뿐 별다른 기대가 없는 눈빛이었다. 은옥은 마음이 급했다. 장황한 인사로 수강생들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으니까.
"오늘 수업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하는 수업입니다."
하면서 앞사람부터 종이인형을 한 장씩 나누어 주자
"꺆, 아, 아~~~"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종이를 받으려고 기다리다 앞사람의 등을 치거나 어깨를 잡아당기는 등 작은 소동이 솜사탕처럼 부풀었다.
"오늘은 인형을 자르고 인쇄된 옷을 잘라서 입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옷을 한 벌씩 그려서 인형에게 입힐 겁니다. 인형 옷으로 왜 이 옷을 그렸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인데,
다들 괜찮으시죠?"
하자, 문제가 없다는 듯 모두 고개를 까닥이며 바쁜 듯 가위질을 했다. 강의실은 들떴던 숨소리가 잦아들자, 사각사각 종이 잘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벽시계는 무심한 듯 제 속도를 어기지 않았다.
은옥의 입가가 환해졌다. 수강생들의 얼굴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어쩌면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읽혔다. 강의실 밖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듯 요란한 빗소리가 한 번씩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에 마음을 줄 여유는 없었다. 환갑을 지난 맏언니는 자신은 키가 작지만 긴치마가 좋다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를 그렸고, 갓 서른을 넘은 수강생은 발랄한 핫팬츠를 그렸다. 간호사를 했다던 수강생은 어릴 적 꿈이 모델이었다면서 챙이 넓은 모자에 꽃을 한가득 그렸다. 지난주 수업을 마치고 전철역까지 태워주던 미정 씨는 넓은 플레어스커트에 꽃무늬가 화려했다. 다들 어쩜 그리 잘 그리는지.
은옥은 벽시계를 쳐다보다 미정 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은 빨리 발표를 하고 싶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강의실 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줍고 가위를 정리하다가, 누가 잘 그렸느니, 색깔이 예쁘다느니 하는 칭찬으로 천장이 몇 번이나 들썩거렸다.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고, 멋졌다.
100인 100색이라더니 스물다섯의 인형은 다 개성이 도드라졌다. 꽃장식을 단 챙 넓은 모자와 날씬한 다리에 꼭 맞는 기다란 부츠를 신은 멋쟁이도, 가방을 메고 낮은 운동화에 칠부바지를 입은 학생도, 널따란 칼라가 달린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에 장식을 단 멋쟁이도, 깡충한 짧은 주름치마에 재킷을 걸친 멋쟁이 등
수강생들의 바람이 종이 인형으로 드러났다.
은옥은 스물다섯 명의 인형을 휴대폰으로 정성껏 찍었다.
드디어 발표의 시간. 앞선 시간에는 눈에 띄지 않도록 고갤 돌리느라 바빴지만, 자신의 인형을 소개하고픈 열서너 살의 소녀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처음 발표자는 맏언니로 인형을 자르며 지난 시절의 자신에게 '고맙다.'라고 했다. 아들이 아주 어릴 때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엄마, 하시고 싶은 거 다하고 사세요.' 하는 말에, 패키지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자랑에 수강생들은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보냈다. 다음 발표자는 맏언니가 살아온 시간이 자신의 어머니 같다면서 오빠만 편애한다고 투정 부리느라 열심히 살지 않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간호사였던 발표자는 3교대 근무가 힘들어서 직종을 바꾸려고 경력단 절을 하게 되었고, 결혼과 출산, 육아로 공백기가 길어져 자신감이 없었던 발표자는 인형을 자르면서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했다. 스물다섯의 수강생들은 각자의 경력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저기서 훌쩍였지만 생각지도 않은 비 오는 날 오후가 오래 남을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랬다. 그 시간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어렸던 시간과 젊은 시절과 떠올리기조차 힘들었던 시간과 바보 같다고 자책했었던 내밀한 자신을 드러낸 집단상담이었다.
마지막 수업이었다. 하늘은 쨍하다 못해 아침부터 진이 빠질 만큼 더웠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지난밤에 잠을 설쳐서 덕지덕지 피곤이 눌어붙었다. 강의 시간이 가까워야 한 명씩 나타나던 강의실은 무언 지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기였다. 수강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환하게 웃는 그녀들이 내뿜는 열기가 왠지 달랐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반갑습니다.' 하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약속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강단 앞으로 나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책상 사이를 걷는 게 아닌가. 그녀들은 마치 누군가의 구령에 맞추는 듯 행동은 절도가 있었고, 얼굴엔 기품과 여유가 있었다. 지난 시간에
꾸민 인형이라도 된 듯이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인도, 연한 볼 터치에 미소를 머금고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널따란 벨트를 맨 여인과 승마 바지인 듯 발목이 좁은 바지에 아랫단이 똑 떨어지는 재킷이 돋보이는 여인에, 어떤 여인은 폭넓은 치마를 조금 감싸 쥐고는 한 바퀴 핑그르르 돌기까지 했다. 앞줄에 앉은 여인이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렇다는 말에 모두가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다.
한바탕 소란과 웃음이 지나고 노트북 화면이 펼쳐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소리를 질렀다.
화면엔 지난 시간에 자신들이 꾸민 인형 스물다섯이 다소곳이 서있었으니까. 자신의 인형을 찾느라 한참 시끄러웠지만, 어수선을 잠재울 만큼 멋진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가는 뻔한 이야기를 펀하게 하는 수업이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간의 과제 아닌가. 지난 한 주가 어떠했기에 이토록 화려하게 변한 여인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패션쇼를 하게 됐는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 전철역까지 태워주던 미정 씨가 의미 있는 웃음과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강사님, 오늘 수업 오래오래 기억될 거예요. 다음 주가 끝인데, 설마 마무리 진도 나가는 건 아니죠?"
하며 쐐기를 박았으니까.
"그럼요."
그런 말이 오갔었다. 그 결과였던지 장롱에서 빛이
바래가던 날개옷들이 바람을 쐬었다. 이 옷은 어떨까, 저 옷은 괜찮을지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선택된 옷들이니까 그녀들이 그렇게 빛이 난 거였다. 집과 여인은 꾸미기 나름이라니까. 은옥도 그 마음을 아는지라, 스치듯 지나가는 초록선이 드문드문 있는 빨강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다. 하양과 빨강이라 색깔은 화려했지만, 옷감이 차분해서 나름의 멋이 있었다.
착 가라앉았던 강의실은 마치 멋진 패션쇼이듯 들떴다. 마지막 수업은 각자 입은 옷에 얽힌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고 2의 어느 날이었다. 급수시험을 앞두고 반쯤 혼이 빠진 아이들을 위해 칠판 가득하게 써놓았던 영어책 몇 페이지를 서슴없이 지우던 담임 선생님. 은옥은 그 흉내를 내듯이 노트북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을 적어 화면에 띄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디선지 기분 좋은 탄식이 흘러나왔고,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누군가의 기침 소리에 은옥과 여인들은 부스럭거리며 각자 가져온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며 종강 파티에 빠져들었다.
은옥의 마지막 강의는 그런 수업이었다. 애석하게도 강의를 해달라는 청이 없었다. 여름은 보내고 가을 지나 겨울이 오면 어디든 달려갈 거라고 신발끈 동여맸지만, 전 세계에 내려진 봉쇄령. 거대한 팬데믹이었다.
그리고 귀밑머리는 하얗게 하얗게 쌓여가는데,
유튜브라는 파도는 거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