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가 뭐지
"여보, 도루가 뭔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두 눈이 화면을 꿰뚫을 듯한 남편에게 물었다. 그 몰입이라니. 내 말을 못 들은 듯해서 다시 물을까 했는데, 예의 그 짜증스러운 반응에 멈칫했다.
"쯧"
몹시 언짢다는 말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야구도 어디 쉬울라고.
'쯧' 하는 걸 안다. 언제 도루를 설명 들은 적은 있지만, 야구에 관심이 없는 데다, 1루나 2루나 말루도 아니고 도루라는 단어는 내 단어 수첩에 들어오질 못 했다.
올여름이 유난히 더운 건 맞다. 그렇다고 '덥다'라는 말만 하며 집에 가만히 있을 순 없잖은가. 아침 산보 가려고 나설 때 집의 온도가 30에 머물렀지만, 익숙한 숫자다.
늘 가는 공원에도 바람 한 점이 없다. 공원을 몇 바퀴 돌고 한 시간 반쯤 집에 왔는데, 등줄기를 지나는 땀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침을 차리다 켠 에어컨은 집의 공기가 차가워질 거니까 각오하라는 듯 요란하다. 윙 소리가 잦아들고 설거지를 하고는 남편과 소파에 앉았다. 읽던 책에 빠져들려는 데, '도루' 란 말이 들려서 물었던 건데, '쯧'이라니.
나는 야구를 모른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도시에 살면서 야구를 모르는 건 내 탓이지만, 흥미는 없다. 나는 한때 야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에 근무했었다. 집에서 출퇴근이 멀어 오래 있진 않았지만, 근무기간엔 야구시즌이었다.
그때는 요즘처럼 휴대폰에서 실시간으로 야구 경기를 알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엔 야구 말고는 다른 일을 멈춰야 했다.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의 80%는 '오늘 경기가 어떻게 될지'를 묻는 전화였다. 처음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날, 직원들은 다들 눈을 반짝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를 기다리면서. 시간은 아침 10시였고, 창밖의 하늘은 비를 머금은 구름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경기가 열릴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직원들은 마치 내가 선발전을 치른 듯이 웃었다.
그렇게 전화를 받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야구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이.
남편의 채널은 스포츠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돼서 결혼을 했는데, 남편과
나의 채널은 많이 달랐다. 거의 스포츠 채널에 고정된 줄은 알았지만, 야구를 많이 알았다.
어느 팀에 어느 선수의 할, 푼, 리가 어떻다는 말에 놀러 온 후배는 멋진 형부라고 했지만, 좁은 집에
과열된 경기 후유증이라니.
남편이 나이가 들고 잡다한 일이 많아 한동안 스포츠 채널은 축구에서 머물렀는데, 올여름은
길에서 만난 옛사랑을 찾듯이 야구로 돌아왔다.
그때 신문에서 읽은 어느 교수의 글이 정말 재밌어서 남편에게 읽어줬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재밌게 잘 썼네."
한다.
그 기사에 주황색 비닐봉다리와 신문지가
멋진 응원도구가 된다는 말에 부산 사람의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기질이 생각났다.
부산 사람은 야구가 맞나?
주황색 비닐봉다리와 신문지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응원도구를 만드는 부산 사람들. 화끈하고 다혈질 에다 계산도 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지만 의리도 있고 정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해 못하는 야구가 맞는 건지. 빨리 경기가 끝나야 퇴근을 하는데,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경기가 중반일 때 짜장면을
시켰다. '퇴근'이란 단어를 모르는 그 곳,
그 직원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시 한 번, 부산 갈매기 떼창을 듣기를
산보를 하고 집으로 오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교복의 경남고 학생을 봤다.
한 때 파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학교 근처를 지나다 선배들에게 붙들려 짜장면이나 만두를 먹었다지. 학창 시절에 같은 종목을 응원한 경험은 몇 십 년의 나이를 뛰어 넘는다. 야구 명문고에 다닌다고 으쓰대던 조카는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만두를 먹고 온 날이면 무용담처럼 선배들의 넘치는 사랑을 자랑했었다. 2025년 고교 야구는 경남고등학교가 우승했다지. 그래, 올 가을에는 고교 야구처럼 부산 곳곳에서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하는 떼창을 듣고 싶다. 특유의 노래가 들려오면
혼자 길을 걷다가 허밍으로라도 같이 불러야지.
나는 야구를 모르지만, 야구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인파가 부산의 활기였음을 알기에.
※ 위 사진은 2025년 8월 28(목)
조선일보 29면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