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옥상에 올라온 이들은 닫힌 줄 몰랐던 서랍을 활짝 열었을까? 바람은 알맞았고 비를 머금은 구름이 추억이란 이름을 하나, 둘 펼쳐보라고 부추겼으니까.
1) 가끔은, 생각 못한 일들이 추억이 되고
'지금 ' 우리는 휴대폰이 없는 삶은 상상도 못 한다.
지난 4월, 한 통신사의 해킹으로 한동안 떠들석 했던 날들이 있었다. 해결책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심 식사 쿠폰이었다. 쿠폰은 저녁도, 주말에도, 연휴에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에다, 부산에는 그 레스토랑 이 세 곳뿐이어서 집과 가까운 곳을 찾아야 했다. 마침 집과 가까운 곳이라 나는 쉽게 갈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서 예약된 시간에 갔는데, 여기저기에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도 생각지도 못한 점심을 먹으러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고, 톡을 보내고, 시간을 맞추고, 들뜬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왔으리라. 로봇은 지치지도 않고 바지런히 자리를 안내해 준다. 아쉽게 창가 자리는 아니지만, 공사가 한창인 북항공원이 내려다보인다. 북항 공원은 공사가 끝나면 이순신 장군을 승전으로 이끈 부산대첩의 의의를 잇는 부산 대첩 공원으로 부르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근처의 용두산 공원과 자갈치시장 등 부산 원도심의 또 다른 공간으로 부산역과 부산항 부두와 연결된 드넓은 공간이다.
온갖 과일과 음식은 눈도 즐겁지만, 입도 즐겁게 한다. 후식 테이블 앞에서 알록달록한 케이크를 집을지 말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다. 엄마와 할머니와 같이 온 아기는 많은 사람이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박이는 모습도 예쁘다.
와인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자, 친구는 옥상에 가자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가봤던 옥상은
어떤 모습일지.
2) 가끔은, 다르게 보기
어딘가를 내려다본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거의 매일 가는 공원도 다르게 보였고, 다리를 지나면서 보았던 바다도 달랐다. 늘 곁을 지나기만 하던 버스 지붕을 보다니, 요즘은 일반 버스도 높이가 웬만한데, 2층 버스를 보다가 아이가 된 듯이 신기해하면서 깔깔 웃었다. 그때 실꾸리 풀리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쳤지.
저 용두산 타워도, 남항대교도, 자갈치 시장에도
같이 오갔던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3) 같은 장소, 다른 추억들은
모처럼 만난 이들은 집으로 가기가 쉽지 않으리.
모두 옥상에 올라가야 하는 듯 떼를 지어 왔다. 우리보다 연배가 한참 높아 보인 아저씨들이
"아지매, 사진 한 장 찍어주소."
하신다.
사진을 많이 찍어보셨는지, 표정이 당당하다.
단체 사진과 몇 분씩 사진을 찍어드렸더니,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연인은 나름의 포즈를 잡고, 중년의 여인들은 작정하고 온 듯이 차례를 지켜가며 사진을 찍었다. 와르르, 와르르 바람 소리인양 웃었고, 점점 잿빛으로 변하는 하늘이
야속하다며 맑은 날 또 오자는 약속을 하고 갔다.
그 여인들이 가고도 우린 한참을 옥상에 있었다.
친구는 외국에 사는 시누이랑 왔던 이야길 했고,
10월에 그 시누이가 아들, 딸을 데리고 올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투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친구는 길 건너 건어물 시장에 간다고 했다. 품이
넉넉한 친구는 일미와 멸치를 사서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건어물 가게 안주인은 친구와 오랜 친구로 가끔 와서 물건을 사가는 친구를 참 좋은 사람이라면서, 그 친구의 친구인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친구도 안주인인 친구도 정말 좋은 사람이다.
동갑내기인 안주인이 손이 관절염으로 고생한다 는데, 나도 손이 저리고 아픈 탓에 마음이 쓰였다. 손이 쉬어야 관절염에 좋은 줄 알지만, 돈은 있어도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쉽게 쉬지를 못함이 안타깝다. 친구랑 지하철을 타러 오면서 그랬다.
"자영업자는 정년이 몇 살이야."
"그냥 쉬면 되는 데, 그게 어렵단 말이야."
100세 시대에 일흔 가까운 나이는 힘들다. 중병이 아니면 쉬기도 어렵고,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더욱더.
4) 가끔은, 추억을 떠올리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돈 많은 외로운 사람'이란 말이 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감정도 필요할 때 꺼내는 것이라 떠올릴 추억이 없는 삶은 어떨까. 힘들었던 시간도 시간이 지나면 다 예쁘게 각인된다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은 악몽을 꾼 시간이라 하자. 현실은 도저히 그 악몽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