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정리전문가라는 직업이 있다. 한정된 공간에 오감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통에 자칫 한눈을 팔면 어느새 공간은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나는 물건에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물건이 쌓인다. 주기적으로 물건을 비우는데, 비움의 대상에는 책도 포함된다.
직장에 다닐 때였다. 관공서라 딱딱한 분위기도 완화하고 조그만 공간에 독서실을 만들면서 직원들에게 책 한 권씩을 기부하라는 공문을 보고 처음으로 오래 가지고 있던 책 다섯 권을 내놓았다. 그때 한 직원이 책을 다섯 권이나 기부하냐면서 그중에 한 권을 집으로 가져갔다. 누가 읽든지 그 책은 내 손을 떠났고, 이후로 그 직원은 혹 기부할 책이나 권하고 싶은 책은 없는지 가끔 물었다.
서른이 넘어 독립할 때, 중학생이던 조카들은 고모의 책에 관심이 많았다. 소설책과 그때는 귀했던 미술 서적에 관심을 보여서 조카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몇 권을 골라 주었더니, 생각지도 않은 선물인 양 아주 좋아하는 모습이 내가 주목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결혼하고 지금 집에 오기까지 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많은 책이 문제였다. 나의 아이들은 이사 때마다 부쩍 자라 있었고, 내가 가진 책은 활자도 디자인도 꺼렸다. 아무렴, 엄마가 아끼던 책이라도 한 세대 이상의 나이 차이에다, 취향이 달랐다. 튼튼한 종이상자에 책은 몇 권을 넣지 않고도 허리가 휘청할 만큼 무겁다. 그 무게는 책을 이루는 책의 내용일까, 물리적 무게일까. 한 권의 책은 무수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책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다. 어떤 글을 쓸지, 책의 크기는, 부피는, 내용에 알맞은 용지와 색깔과 몇 권의 책을 만들지, 누구의 추천을 받으며, 누구에게 감사인사를 전할지까지를 생각하게 된다. 책 한 권에 깃든 여러 사람의 열과 성과 불면의 밤을 어찌 다 가늠하겠냐마는 그럼에도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
나도 가끔은 글로써 주목받고 싶다.
일흔이 가깝도록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신문이다. 그럼에도 예순한 살의 나는 책을 한 권 썼다.
제목은 <다리 위에서>인데, 나의 이름인 민(강할 민), 교(다리 교)로 글을 쓰고 싶었던 50대 이후의 날들과 떠올리고 싶었던 날들을 기록한 책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주었다.
또 아이들의 이름으로 쓴 책은 아이들이 독립할 때 손에 들려주었다. 요즘처럼 제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타고난 재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엉성한 나의 글을 발표할 생각은 못 했는데, 집 주변의 백일장이나 문화원에서 공모하는 글쓰기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성에 차질 않았다. 이제 발을 조금 멀리 떼어보고 싶다. 나도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기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어떤 책방에 쓰인
"사람이 만든 책 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라는 글은 동서고금과 형태를 아우르는 책의 막중한 무게와 파급력을 실감한다. 한 권의 책은 이토록 사명이 지대하다.
이사 때마다 꿋꿋이 남아 37년을 내 곁을 지키는
한 권의 책은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는
오규원 시인의 시집이다. 문학과 지성사의 시인선 60으로 나온 이 시집은 1987년 9월에 초판 되었고, 1988년 2월에 3쇄로 발행되었다.
단조로운 것은 생의 노래를 잠들게 하고
머무르는 것은 생의 언어를 침묵하게 하며
인생이란 그저 살아가는 짧은 무엇이
아닌 것처럼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는 시는,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글쓰기의 힘겨움으로 글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려던 나를 지긋이 지켜보면서 나태해지지 않고 녹슬지 않는 언어로 벼리게 했다.
그렇기에 때로 지친 어깨로 찾아와
나의 글에 기대어 울고 웃을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의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