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변화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개울을 흐르는 물은 머무르지 않는다. 한 방울, 한 방울 사방으로 흩어진 식구들을 이끌고 구부러진 골짜기를 지나와 얕아지고 넓어진 하류에 닿으면 조용한 흐름이 된다.
여름날, 울퉁불퉁한 산기슭을 오르다 '똑똑똑' 떨어지는 개울물을 만나면 갑자기 갈증이 인다. 미리 준비하라는 듯이. 그때 손바닥으로 퍼마신 물과 손가락을 간질이고 떨어진 물은 같은 물이 아니다. 그건 흐르는 물의 속성이며, 살아 펄떡이는 삼라만상의 본성이다. 모든 건 왔다가 가는 것, 그 무엇도 거스를 수가 없다.
인간의 욕심에 대해 생각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 한다. 누구든 세상에
온 것을 선택하지 않고 내팽개침 당하였기에 타인들보다 환경이나 가족, 유전자의 우월함은 부러워할 만하다. 거기에 본인의 타고난 기질에 상승 욕구가 강하면 타인들보다 살아감이 수월할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백 세를 사는 것이 사실처럼 된 지금, 예순을 생각한다. 요즘처럼 평균수명도 길어지고 개인의 선택과 주어진 환경에 따라 백 세의 생일을 거뜬히 맞는 이때, 이미 옛날의 풍습이 되어버린 예순한 살의 환갑이란 시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지만, 사회적인 몫도 크다.
물은 흐르고 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 흐름에 맞추어 우리들의 마음도 시선도 흐르고 흘러 저 대양에 닿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사람은 '지금'에 걸음을 멈춘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이룬 게 많아서 그러기도 하지만, 세상살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번거롭기도 하고, 버릇이라는 천성에 기대기 때문이다. 이제 귀가 부드러워진다는 예순 이후를 살아가는 데, 꼭 살아온 시간을 되새김할 필요가 있을까? 60여 년을 살아오면서 지겹도록 자신과 싸우고 겨루고 희생하고 양보하고 내어주고 깎여봤지 않은가. 여분의 시간은 누구나 알 수 없기에 살아온 시간과는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
오랫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한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인생을 생각하며 가장 후회하는 첫 번째는 '자신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일만 너무 열심히 했으며' 세 번째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가 달리 변해가는 세상을 살려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 편하다고, 익숙하다고 예전의 방식과 디자인만 고집한다면 예순 이후의 삶을 살기에는 서툴다. 생활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살아왔던 시간은 고이 접어두고 이제부터는 자신에게 눈길을 돌려보자.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팠던 장인들이 일군 작업은 이제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피와 땀과 눈물과 회한의 시간이었고, 설익은 재능으로 의심하며 아파했던 지난날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피와 땀, 회한의 시간에 버금가는 고통과 처절함과 분노와 감사와 모든 걸 쏟아붓고 난 후의 후련함과 무언가 모를 미진함에 밤새 서성이던 시간을 보냈었다.
이제 예순 이후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이어야 한다. 그 길이 쉽지 않음은 안다. 그러나 변한 세상에 변한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겁먹지 말자. 우리는 많은 것을 가져봤고, 많은 것을 해냈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
여기 한 음류 시인이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며,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는 '변화'의 노래가 있다..
변화 <최백호>
변치 않는 것이 있을까.
돌이켜보면 모든 게 똑같지 않은데
무엇에 기대고 무엇을 기대하며
난 오늘도 나를 이어가네
모든 것이 변해가지만
이제야 조금 알겠네.
그 많은 시간에
사랑도 사람도 지난 모든 것들은
그것으로 아름다운 것을
ㅡ 중략 ㅡ
백발의 사내는 젊은 날과 낭만과 그리워하던 모든 것들이 부산에 가면 있다고 했다. 소금기 가득한 목소리가 달빛이 부서지는 바다를 어루만지고, 선창을 구르고, 테트라포드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파도와 겨룬다. 그 거대한 자연을 보며 노래하는 시인이 부산의 변화를 얼마나 느낄지. 매일 매일 청년들은 서울로, 서울 근교로 밥벌이를 위해 떠나가 텅 빈 도시가 되어가는 고향 바닷가를 알까. 인구소멸지역이라 불리는 그의 고향이 노인과 바다만 남은 도시가 되어가는 것을.
그러기에 우리가 변해야 한다. 어딘들 무엇인들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으랴. 우리는
스물의 날에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효와 전통이란 명분에 얽매여서 일찍 가정도 꾸렸었다. 서툰 손으로 지아비 지어미가 되고, 부모가 되어 밤을 낮으로 삼는 아이들을 길러내며 아이들의 기쁨은 그들보다 배가 넘었고, 그들의 좌절은 하늘이 두 동강 나는 아픔에 쑤셔오는 무릎에도 백팔배도 올렸었다.
흑단 같은 머릿결은 어디로 갔는지. 귀밑머리 하얘지고, 이마에 드러난 골짝에도 우리들의 젊음은 어딘가 남아 있으리. 눈만 뜨면 끌어올리던 시시포스의 바윗돌은 언덕 저 아래로 굴려버리고, 다시금 목청껏 청춘예찬을 노래하며 흐르는 물이 데리고 간 젊은 날의 저력을 자양분 삼아 오늘도 변화를 위해 한 발, 크게 내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