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수학을 못하는 것은

ㅡ 철학의 부재를 알다

by 민교


딸은 수학을 못 하는 걸, 내 탓이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다.

'삶은 해석' 하기 나름이라서 내가 수학을 못 했다 는 말을 했다고, 딸이 수학을 못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사회과목과 국어가 재밌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그때 추첨으로 간 중학교. 집에서 가까 워서 좋았다) 부산의 이름난 사학재단이었는데, 그때 부담임이 있었다. 1학년때 부담임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와서 자신이 아는 걸 다 가르쳐주고 싶어 하던 선생님이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세계지리를 이야기할 때는, 궁금하고 신기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눈을 떼지 않고 설명을 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나중에 사회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그 선생님은 2학기에 대학원에 간다고 학교를 떠나시며, 아끼던 책들을 우리 반 문고에 기증하셨다. 그래서 사회과목이 더 좋았었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두 아이랑 공부를 하다가 내가 가장 자신이 없던 과목이 수학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딸은 수학을 못 해도 되는 면죄부로 생각했었나? 어쨌든 딸이 나를 닮아서 그랬는지,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신 사회과목 점수는 뛰어났었다. 아마, 그때 남편이 아이들 공부에 관심을 가졌으면 딸의 수학 성적이 조금 더 좋았을지 모른다.


남편은 지금도 자신은 수학을 잘 했다고 하지만, 뒷북을 치면 뭐 하냐 말이다. 아빠란 사람이 필요할 때는 제 역할을 안 하다가 지금 와서 수학을 잘했다고 하는 건, 참 책임감 없는 말이다.

남편은 열심히 직장을 다녔지만, 우리도 제 맡은 바는 다 했다. 아이들은 그때 엄마와 머리 맞대고 책을 읽은 덕에 국어와 사회 성적이 좋았으며, 학원은 안 갔으니까.


그건 그렇고, 많은 아이들이 오래 수학 학원을 다니면서도 고등학생이 되면 수포자니 뭐니 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수학 교육의 잘못이다. 이 책을 보면서 더 확신하게 되었다(나도 수학을 이렇게 재밌게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나이더도 어릴 때 뺄셈이 어려웠고, 반복적인 연습이 싫었다고 한다.

누구든 그렇지 않았을까. 數가 가지는 의미나 유래 등 설명 들으면서 수학을 배웠더라면 수포자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수학을 알아챘을 건데 말이다.


오래전 한 신문사에서 집안에 흩어져 있는 디자인을 찾아보라고 했다. 거기서 수학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서 찾은 디자인은 화장실 세면대에도, 벽 타일에도, 병뚜껑에도, 옷에 달린 단추 등에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학은 음표에도 있었고, 그림에도 있었다.

그걸 빨리 알았더라면, 성인이 된 딸에게 수학 성적이 안 좋았던 건 엄마가 수학을 못 했다는 말을 한 탓이라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되었니까.

아무튼 수학은 철학이었고, 디자인이었으며, 계단의 개수였고, 폭이었고, 넓이였다.

아니, 수학은 생활 그 자체였다.



12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상업과 금융업, 측량에서 고대 고마 제국의 유물인 불편한 로마 숫자를 사용했다. 두 개의 로마 숫자를 가지고 곱셈이나 덧셈을 해보라.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202년에 수학자이자 상인인 피사의 레오나르드( Leonardo of Pisa)가 계산서를 출판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0에서 9까지의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도록 유럽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버지의 별명이 보나치오( Bonaccio:쾌활한 남자라는 뜻)였으므로, 레오나르도는 라틴어로 '보나치오의 아들'이란 뜻으로

'필리우스 보나치오(filius Bonaccio)'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줄여서 '피보나치( Fibonacci)' 라고 불리게 되었다."

[수학은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하는가] p151에서



수학을 재밌게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학은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하는가]를 읽고 '피보나치'를 알게 된 것과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디자인을 알아챈 것은 수학에 대한 외연을 넓힌 기회였다.


요즘은 무엇이든 이야기로 풀어내는 시대이다. 우리도 수학을 전문가만 아는 학문이 아닌 공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수학의 한 귀퉁이에

편하게 닿았으면 한다.


더 넓은 광명 이케아에서 느꼈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니었고, 조립을 해야 하는 불편에 별다른 디자인도 없었지만, 가구들이 서로 호환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것은 디자인의 힘이었다.

그건 그들의 문화였고, 가구에서 생활양식까지

數學이었다. 우리 문화와는 많이 달랐던.



딸은 수학 성적과 무관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 됐지 않은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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