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에 빠지다

ㅡ 추상(追想)이란 영화를 아는지

by 민교


1) 영화광의 변

극장을 대관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아는지?

그게 조조영화를 보는 묘미다.

추워서 관객이 없나?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서 그나, 아무튼 혼자서 영화를 볼 때가 많다. 여기저기 앉아보고 가장 편하고 좋은 자리로 고정석을 만든 뒤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출구를 알리는 불빛도 방해가 안 된다.

조조영화를 보러 간다고 설거지도 팽개치고

바쁜 듯 집을 나서는 재미라니.

그러고 보니 나는 꽤 영화광이다.



2) 극장이 있던 동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그때는 알아주는 부촌에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동네 문화와 전혀 무관한 산동네 아이였던 나는, 부잣집에서 불이 난 걸 구경하러 갔다가 커다란 문화충격을 받았다. 국민학교 2학년인 내가 아는 바로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교회나 성당 등있어야 했다.

불이 난 집 부서진 담벼락에 붙어서 본 마당에는, 불에 타다 만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60년대 후반이던 어린 시절, 동네는 극장이 곳 있었다. 지금 동아대 부민캠퍼스 앞에 있던 영남극장은 한 번도 못 가봤지만, 부산은행 동대신 지점 자리에 있던 서부극장은 서너 번 갔었다. 근처에는 교도소가 있었고, 엄마가 배추를 팔던 큰 시장에는 교도소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국민학생인 내가 가끔 배추를 배달해 주면,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해주었다. 거기다 부자 동네 아줌마들도 쪼그만 아이가 엄마를 잘 도와준다고 자신들의 아이들과 같이 극장에 데려다주었다. 그때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영화들은 재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는 귀한 데다, 툭하면 헤어지고 우는 영화라 더 그랬다. 무슨 영화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울기만 하는지.



3) 취향의 시작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오빠가 금성 텔레비전을

사 왔다. 아코디언처럼 양 옆으로 문이 열리던 텔레비전은 오빠가 출근할 때 잠그고 갔다. 열쇠가 없어도, 젓가락 두 개를 열쇠 구멍에 잘 맞추면 TV는 쉽게 열렸다. 문제는 낮 시간에는 방송을

안 했다. 그러다 주말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끝도 없는 광고가 두세 번 이어지는 꼴이라니.

나는 초저녁 잠이 많아 영화가 시작되면,

고개가 방아를 찧었다. 그때 한참 인기가 있던 쿼바디스나 벤허 등을 그래서 못 봤다. 그래도 아쉽지 않은 건, 그 영화들은 내 취향이 아닌 데다 상영시간이 길어서다. 영화는 한 90분 정도면 적당하지, 무슨 세 시간, 네 시간이나 하는지.



4) 왠지 끌는 영화는

중 1 때 담임선생님은 가정선생님으로. 늘씬한 몸매에 손수 만든 옷들을 입고 다니셨다.

그 선생님은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영화를 보면 감독과 주인공은 꼭 기억해 놓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본 영화는 마지막 부분이 너무 강렬해서 국적도, 감독도, 주인공도 기억을 못 했다.

억을 떠올려서 찾아낸 영화는,

프랑스 영화인 Le Vieux Fusil(추상)이다.


추상(追想, Old Gun)


추상의 배경은 2차 대전 말기다.

평화롭게 잘 살던 의사가 독일군에게 가족을 잃, 독일군들을 오래된 총으로 복수하는 사이사이에 가족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가끔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봤으면 했지만,

다시 볼 순 없었다. 얼마 전, 어떤 블로그를 보다 국내 개봉 당시 신문 광고를 올려놓은 걸 봤다.



얕은 냇물처럼 잔잔한 풍경에다, 인간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그런 영화가 좋았다.

이후로

마음에 든 영화는 거의 프랑스 영화였다.



그랑블루에 빠지다 ☆


파란색이라니.

그랑블루는 '넓은 바다'라는데, 나는 깊고도 깊은 바다로 받아들였다. 그랑블루를 본 때가 삶의 전환기일 때라서 더 마음에 남은 영화로, 시간을 두고, 두 번 본 영화다. 리메이크 영화가 나왔지만, 원본의 이미지를 희석시켜서 안 보는 게 원칙이다.



네프의 연인들 ☆


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만난 영화였다.

어떤 역할이던 온몸을 던져 연기가 아닌 실제로 해낼 배우로 보였다. 두 번을 봤는데, 조조영화로 다시 만나고 싶다.


☆ 프렌치 수프 ☆


음식 재료를 심고, 가꾸고, 다듬고, 만들고,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영화다.

주인공으로 나온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은 부부였다. 시간은 두 사람을 각자의 위치에 서게 했지만, 영화에서 연인으로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둘의 호흡이 참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알았네. 둘의 관계를.

배우는 하늘이 주는 직업인지? 내가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두 번째 볼 때 문정희 시인의 부부라는 시가 생각났다.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누워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ㅡ 문정희시인의 부부 ㅡ 앞부분입니다.



☆ 파리, 밤의 여행자들 ☆


삶의 형태는 대륙을 구분하지 않는다.

무지에서 오는 무책임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은~~~



☆ 두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토


재능 있는 쌍둥이 자매가 피아노를 친다. 쌍둥이지만 모든 것이 똑같지는 않다.

母係로 이어지는 유전병은 피아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이다. 실망과 좌절과 단절을 겪은 자매가 재해석한 콘체르토. 영화를 보면서 빨려 들어갔다. 한 명은 건반악기인 피아노를 쳤고, 다른 한 명은 피아노를 마치 하프처럼 뜯는 듯했으니까.

한국적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였지만, 실화라고 한다. 쌍둥이는 특별했다.



나에게 프랑스 영화도 특별하다.

그 나라의 言語는 몰라도

분위기로 알 수 있고,

자분자분 설명하는 듯 해서 좋다.





※ 추상의 신문 광고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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