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때론 술친구가 되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한국 고전인문학자인 고미숙 作家가 쓴 책들이다.
한참 인문학 공부에 빠져있을 때, 부경대에서
CEO 행복인문학 콘서트가 열렸었다.
아침 7시부터 8시 40분까지 이어지던 강의는, 격주로 진행되었으며, 열기가 대단했다.
친구의 소개로 가게 되었는데, 강사진이 쟁쟁했다. 전국의 대학교 교수님들과 재야의 숨은 고수들이 자신들이 평생 갈고 닦은 실력을 한 자락으로
펴 보이는 자리였다.
강연의 주제는 다양했고, 청중의 귀는 한껏 열렸 으며, 가슴은 벅찼다. 이른 시간에 강연을 들으러 오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드레스 코드가 있는 양 다들 멋진 파티에 가듯 차려입고 오는 CEO들을 보는 것도 또 다른 공부였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강의는, 서강대 교수였던 최진석 교수의 강의와 고미숙 작가님의 강의였다. 최교수는 강의 도중 수시로 물었다.
"너는 너 자신으로 살고 있냐?"
라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귀를 쫑긋해서 듣고 있는 데도, 불시에 습격을 당한 듯한 것은 질문의 무게였다.
"나 자신으로 살고 있나?"
라는 질문은, 노년 삶에 대한 미리 보기였다.
강사들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까. 한 강사가 그랬다. "학문이라는 거대한 흐름에서 한 가닥을 잡으려고 기울인 노력이나, CEO 여러분이 기업체를 꾸려가 는 것은 같은 것이다."
라는 말은 신선했고,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위해 힘껏 무언가를 하지만, 계급과 격차가 있어 자신이 하는 일을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神이 다양성을 좋아하듯 일도, 사람도 각양각색이라 쓰임새가 다양한데도, 눈에 띄고 남보기에 그럴싸한 일이 최고의 일인 듯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AI와 쳇 GPT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
30대 초반의 딸이 그랬다.
"엄마는 주변 정리를 잘한다."
딸은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도, 남편도, 친구들도 딸의 나이 때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그때 그 나이에 만나야 할 사람과 보내고 그리워하거나 헤어짐이 아쉬운 사람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건널목에서 어긋나거나, 장소를 잘못 기억해서 영영 못 만나기도 한다. 그건 그 사람과의
시간이 다한 것이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주어진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그걸 평생 이끌고 가는 것은
자유의지다. 그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에 그런 인과관계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노년의 공부 아닐까.
그러다 읽은 책이 고미숙 작가였다. 많은 강사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무대를 휘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였다. 비슷한 연배에 자그마한 여인은 강단 있게 보였다.
아니, 나이 든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커다란 마름모를 공중에 띄운 듯, 뾰족한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一聲은 조금씩 조금씩 마름모 정중앙에 도달했다. 청중은 침을 꼴깍 삼켰고, 숨은 멎었다. 다시 마름모를 돌아서 반대쪽 끄트머리에 닿기까지,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힘차게 긋던 현악기와 잔잔하게 어우러지던 팀파니 소리가 공연장 벽을 돌아와 소리가 멈추듯이 청중들은 가만있었다.
강사가 인사를 하고서야 강연장이 무너지도록 박수를 쳤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멋진, 달콤한, 혼을 쏙 빼놓는 강의였다. 그리고 여러 권의 冊을
읽었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2012년에 출간된
冊으로, 나는 초판 2쇄 본을 샀다. 내용이 재밌고 어려워서 한 번은 정독을 하고, 두 번째부터 밑줄이 그어진 부분과 메모된 부분을 읽었었다. 책머리에 나오는 <천지만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운명이 있다>를 실행하듯,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었다. 그러다 책장정리 겸 독서노트를 쓰다 새롭게 운명적으로 만났다. 책은 280 여 페이지 이지만, 천간 탐구와 지지 탐구생활을 할 수 있는
부록이 있다. 둔한 머리로 탐구생활을 살펴볼 料量은 없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1) 약속 지키기(시공간과 몸이 일치한다.)
2) 청소의 일상화이다.
약속 지키기와 청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년이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생각도 없이 못 지킬 약속에다 산만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노년의 공부가 아니다.
현대인들이, 특히 노년기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와 암과 무의미하게 生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도 책을 꼭꼭 씹어 읽고
나의 에너지를 총동원하여 글을 쓰야 한다. 글쓰기는 노년의 공부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니까.
그리고, 남편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부글부글 했다. 익히 알고 있었던, 그냥 넘기기가 부담스러운 사안이었다. 그렇다고 정해진 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몸까지 아프게 한다.
한참 속을 끓이다 자려는 남편을 꼬드겼다.
아들이 생일에 보낸 치킨 쿠폰으로 달래려고. 남편은 닭띠라 치킨은 극혐인데, 소주는 없었다. 숨겨둔 위스키도 바닥인데, 추석부터 자릴 지키던 맥주가 등판한다. 그 짜증을, 부글거림을, 원망을 애꿎은 치킨 몇 조각으로 달랜 남편은 잠꼬대도 뒤척임도 없이 달게 잤다.
우리는 매일 투닥거려도 원팀의 수장인 남편은 행복한 사람이다. 금요일, 오후 3시의 퇴근 후에 이리저리 둘러보고 올 남편을 기다리지 않음도 노년 공부의 한 과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