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일상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꽃샘추위로 바람은 차가웠지만, 길어진 해가 자꾸 등을 떠밀었다. 찬 바람에 묻어온 봄은 어딘가 훌쩍 떠났다 오라고 했다.
지난 금요일 지역신문에서 본 식당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곳은 위쪽에서도 아래쪽에서도 지나간 적이 있지만, 식당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한 30 분쯤이면 가는 곳인데, 점심시간을 지난 버스는 종점에서 운행 대기 중이라는 안내가 뜬다. 20분가량을 기다리기 에는 무리인데, 그 버스와 노선이 겹치는 버스가 왔다. 환승을 생각하고 앞에 선 버스를 탔다.
부산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내리자 광장에는 햇살과 비둘기들이 반긴다. 바람이 잠잠하면 공원에서 놀다 올 때와 다른 길로 돌아가도 멋진 나들이가 되겠지만, 지금은 들러야 할 식당으로 가는 길이다. 짓궂은 바람이 무시로 넘나들어 '춥다'는 소리가 이어지는데, 그 식당으로 가는 버스는 더디게 온다. 한 10 여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익숙한 거리는 많이 바뀌었고, 나무들은 벚꽃 길을 만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신문에는 부산역 쪽에서 찾아가는 길을 알려줬지만, 그 동네를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부근에서 내렸다. 지나는 사람들은 다 노령층이다. 그나마 햇빛이 원 없이 쏟아졌지만, 찬 바람으로 종종걸음이다. 간판도 없고 어떤 표식도 없다는데, 찾기는 수월했다. 근처에 오랜 세월을 지나온 싸전이 있었다.
"아, 거가 그 식당이가. 저 오토바이 선 데 가면, 글자가 써져 있다."
그분 덕분에 식당을 쉽게 찾았다. 비가 오거나 땀이 정신없이 흐르면, 너무 밋밋해서 무심하게 지나칠 식당 문에 상호가 적혀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랬는지, 조용했다. 혹 이른 마감을 한 건
아닌가 하며 살펴본 실내는, 머물러 있는 시간과 달리 차곡차곡 쌓인 멸치 상자가 찾는 이들이 많다고 알려주었다.
식당의 모든 메뉴가 2,500원이고, 디저트는 2,000원인데, 도저히 지금 세상의 가격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주문을 받는다. 쫄우동. 쫄이 들어간 메뉴는 잘 안 먹는 음식이지만, 국물이 있어 주문을 했다. 조금 뒤에 온 손님도 쫄우동이다. 어쩜 오늘 대표 메뉴가 쫄우동이었을지도.
쫄우동은 그 정성에 그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뒤에 온 손님이
"사장님, 팥크림도 주세요."
하자, 수건을 두른 주방장이 나오셨다.
허리가 꼿꼿하고 볼이 빨간 할머니는 맛이 어땠는지 묻는 듯,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팥빙수 같은 팥크림을 만드시기에, 나도 팥크림을 주문했다. 나는 量이 버거웠지만, 쫄우동에 팥크림까지 먹었다. 달디달아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다.
여행이라 마음먹고 나선 길이라 어떤 음식이든 맛봐야 한다. 우동을 먹으러 비행기를 타는 시대에, 그 정성과 가격이 놀라워서 찾아온 곳이다. 계산을 하면서 보니, 카드도 계좌이 체도 안 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디저트까지 먹고도 ₩4,500원이라니, 놀랍다.
가까이에서 본 두 분은 구도자 같았다. 매일 의식을 치르듯 가게를 열고 닫았을 오랜 시간들.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아, 어떻게 알고 오는지 일본에서 배를 타고 와."
그 말에는 자신도, 아내도 며칠 훌훌 털고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말이었다. 동생들이랑 국내 여행은 몇 번 다녀왔지만, 비행기를 타거나 바로 앞에 부산항 여객터미널을 두고도 가보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팔순을 지난 두 분은 언제쯤 편안하게 여행을 하고 와서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실까? 늦은 점심을
먹으러 하나, 둘 식당 문을 여는 손님들을 위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부산역이 빤히 보이는 초량시장 입구는 한산했고, 부산역에서 흩어져 나온 캐리어를 끄는 이들은
자신의 목적지로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걸어갈까 했지만,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를 피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몇 년 전에 울산에서 만났던
조그만 식당 사장님이 생각났다. 처음 간 곳이라
밥때를 놓치고 오후 세 시가 다 되어서 들어간 식당이었다.
"낯이 서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야지."
하시길래
"집이 부산인데, 이것저것 챙긴다고 집에서 늦게 나왔어요."
하자. 사장님은 점심 손님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오늘 잘 왔어. 맨날 국솥에 엎어졌다가 낼모레 팔십인 것도 모르고 살았어. 이 번 달만 하고 인자 안 할 거야. 자, 이것도 묵어봐."
하시며, 사장님이 드실 반찬들까지 내어 놓으셨다.
그날, 상에 그득하게 올랐던 세 가지 김치와 미역국과 된장에 버무린 나물을 먹다가 난데없이 흐르던 눈물이라니. 사장님이 말한 이 번 달은 닷새가 남았었다. 밥보다 그 정이 더 맛있었던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와도 늦게까지 하늘에는 해가 있었다.
집으로 오면서 늦은 나이의 현역이라도 혼자는 어떤 결단이든 내리기가 쉽겠지만, 부부는 그렇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만 뜨면 시작되던 일상을 벗어나기도 어렵지만, 누려보지 않은 여가 활동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다.
울산의 사장님도 초량의 두 분도 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