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사는 시대에

ㅡ 현실은 그렇지 않다

by 민교


나는 의식적으로 AI와 제미나이에게 묻지 않는다.

기억을 더 오래 잡아두려는 목적도 있지만,

인간 개개인에 관한 것은 아직 AI가 학습하지 않아서다.


집단지성이 응축된 도구를 활용하지 않는 건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몇 해 전의 실수와

행정처리의 빈 곳은 어떻게 메울까 하는 조바심 또는 염려에서다.


몇 해 전, 가스렌지의 오래된 후드필터를 바꾸려고 인터넷을 여기저기 뒤졌다. 겨우 찾은 회사의 고객 센터는 람이 아닌 쳇 GPT가 고객을 응대했다.

쳇 GPT에게 원하는 크기의 후드터를 알려주면 서 가로, 세로의 방향이 맞을까 갸우뚱했다.

쎄한 예감에 맞게 배달된 후드 필터는 가로와 세로가 바뀐 모양로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예감이 맞네. 실수를 하면서 배운다니까."

하면서, 그 아이와 오간 말을 반대로 주문을 해서 받은 후드 필터를 지금 쓰고 있다.


나의 경험은 한 개인의 경험이라고 하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불편을 겪으리라 생각한다.


치매머니를 아는지?

치매머니 고령자가 치매로 진단된 후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되면서 고령자의 자산이 사실상 죽은 돈이 되는 것이다(인터넷의 설명을 가져옴).


은행에서 만난 연배가 많아 보이던 분들은 자신의 통장 비밀번호를 몰라서 돈을 찾질 못하고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옆에서 업무를 보던 분은 몇 번을 거듭해도 자신의 주민번호를 외우지 못해 애를 태웠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 안타깝기만 했다.


언니의 통장에는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갈

예금이 조금 있었는데, 내가 통장을 관리하고 있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같은 부모라도 자매가 가족관계증명서가 다른 게 문제였다.


언니와 내가 같은 부모의 자녀임을 증명하려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적등본이 있어야 하는데,

전산 누락으로 제적등본이 없을 줄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가 호주가 되면서 전산 누락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일이 닥쳐야 알 수 있는 데다,

은행의 직원은 제적등본을 처음 대하는 눈치였다. 그런데다 이름이 다 한자로 되어 있어 다른 서류를 원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전산기록에 몇 번이나 들어가서 올바른 서류를 만들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옛날에 손으로 쓴 제적등본이 나왔고(그것도 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에서 오빠로 바로 호주 상속된),

그 이름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동사무소 직원도

漢字에 막혔다. 거기다 돌아가신 지 40 년도 더 지난 아버지의 주민번호를 물어보는데, 나도 탁 막혔다.

성함과 생년월일은 알았지만, 주민번호까지.


동사무소 직원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주소를 물어보았고, 번지가 바뀌기 전의 주소를 입력하자, 주민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제적등본을 만드니, 은행 일은 수월해졌는데, 그 등본이 한자로 되어 있어 관계와 이름은 연필로 적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아버지의 주민번호 외에는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었고, 언니의

통장과 도장을 가져간 데다 통장 비밀번호까지

또박또박 눌렀으니, 일은 금방 끝났다.


옆자리 할머니는 30여분이 지나도 떠오르지 않는 주민번호 때문에 집에도 못 가셨는데. 뒷자리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분들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 자리가 줄었다고 안심하시는 모습이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통장을 가진 건,

노령연금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은행 업무가 지금처럼 까다롭지 않아

은행 업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세상살이가 점점 야박해지고 보이스피싱이란 무시무시한 공포와 타인의 통장을 노리는 사람들로 노령연금을 받는 날은 은행에 몇 시간씩 계셔야 하는 불편함이 안쓰럽다.

모든 걸 기억해 낼 수는 없다. 기억을 하는 것도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은행에서 애를 태우는 분들의 젊은 시절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아니었다.


세상은 점점 기계화되어 노령층을 힘들게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 비밀 번호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께 틈이 날 때마다 주민번호를 큰소리로 말하라고 하고 싶다. 혀끝에 맴도는 번호를 입 밖으로 내보내는 습관은 기억력을 증진시킨다.


은행에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아들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통장 비번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두 서너 개의 계좌가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럴 때 엄마는 잔소리를 한다.

"적어야 안다니까~"

하는데, 웃음 섞인 말투로

"적자생존,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ㅎㅎ."

하면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적어야지.

호비어 파듯 적고 기억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 때는 자주 펴보던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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